카라이프

왼손엔 핸들, 오른손으론 문자… 도로 위 흉기 스몸비

이슬비 기자

입력 : 2017.03.22 03:10

"악, 충돌한다."

지난 16일 오전 11시 경기 화성시에 있는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 실습장. 운전 중 스마트폰 통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실험하느라 시속 60㎞로 차를 몰던 기자 눈앞에 빨간색 고깔 모양의 트래픽콘이 날아들었다. 통화하면서 차를 몰다가 "오늘 점심 메뉴 뭘로 할까요"란 상대방 질문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는 걸 뒤늦게 본 것이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지만, 횡단보도까지 차가 밀리면서 보행자 대신 설치된 트래픽콘과 충돌했다. 트래픽콘 2개는 앞바퀴에 깔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졌다. 실험이었으니 망정이지, 실제 상황이었으면 인명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교통안전공단이 설계한 이번 실험은 시속 60㎞로 달리다가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면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완전히 세운 뒤 정지할 때까지 거리를 재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기자는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면서 운전할 때와 정상 주행할 때로 나눠 각각 5번 실험했다. 반복 실험 결과, 통화하면서 운전할 때와 정상 주행할 때 정지거리는 각각 평균 41m, 23m로 측정됐다. 거의 2배 차이가 난 것이다.

순간 대응 능력을 측정하는 순발력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났다. 정상 주행할 때는 빨간불을 보고 가속페달에서 발을 뗀 뒤 브레이크를 밟기 직전까지 0.7초가 걸렸다. 반면 통화하면서 달릴 때는 1.6초까지 늘어났다. 하승우 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시속 60㎞로 달리는 차는 1초에 약 16.7m씩 움직인다"며 "실제 도로였으면 100% 앞차를 들이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운전할 때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도로 위의 스몸비(스마트폰+좀비) 때문에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5년 7월 경기 김포시 48번 국도에서 홍모(28)씨가 몰던 승용차가 도로포장 공사 중이던 인부 3명을 쳤다. 이들은 모두 사망했다. 홍씨는 경찰 조사에서 "스마트폰에 적힌 업무 일정표를 확인하느라 인부들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운전자와 보행자가 모두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가 사고가 난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 하남시의 한 이면도로에서 스마트폰 메시지를 보내며 운전하던 김모(62)씨가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걸어오던 박모(30)씨를 치는 사고가 났다. 경찰은 "당시 차가 시속 20㎞ 정도로 느린 편이었는데도 스마트폰에 빠져 서로 마주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대해상이 자사(自社)의 사고 보상 통계를 분석한 결과, 스마트폰 때문에 발생한 교통사고는 2011년 624건에서 지난해 1883건으로 5년 만에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한 손에는 핸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든 '한손 핸들족(族)'들 때문에 운전자 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출발 신호를 놓치는 운전자들이나 스마트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려고 일부러 서행하는 운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에서 강남구까지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최모(28)씨는 "신호가 바뀌어도 앞차가 출발을 안 해서 옆 차선으로 비켜가 보면 십중팔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가 시선(視線) 변화를 측정하는 특수 장비로 운전 중 전방 주시율(앞을 보는 비율)을 조사했더니, 통화할 때 전방 주시율은 57%로 나타났다. 운전하면서 통화하면 앞을 보는 비율이 절반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정상 주행 시 전방 주시율은 90% 이상이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전방 주시율은 23.9%, 내비게이션을 조작할 때는 16.5%로 더 낮아졌다. 이수일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박사는 "운전 중 스마트폰을 쓰는 운전자들의 반응속도는 혈중알코올농도 0.08%(소주 반 병 이상)인 음주 운전자와 비슷하다"고 했다.

[신조어 '스몸비'는] 2015년 獨서 등장, 전세계 확산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인 '스몸비(smombie)'는 '스마트폰에 빠져 외부와 단절된 채 좀비처럼 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2015년 독일에서 처음 사용된 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조어다. 독일의 유명한 사전 출판사 '랑겐샤이트'는 매년 독일의 젊은 층이 많이 쓰는 '올해의 청년 신조어'를 조사한 뒤 상위권에 오른 단어를 새로 사전에 포함시키는데, 스몸비가 2015년 랑겐샤이트 조사에서 4위에 올랐다. 이후 스몸비는 영국 신문 가디언, 미국 뉴스 채널 CNN과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 언론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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