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빅 브라더 사회' 꿈꾸는 시진핑

박수현 기자

입력 : 2018.01.23 08:02

중국 상하이에서 경적을 울리면 그 차의 번호가 도로 한쪽에 있는 전광판에 뜬다. 망신살이 뻗치는 건 잠깐이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 200위안에 달하는 벌금 부과에 ‘감점’까지 쌓인다. 중국 정부가 2014년 도입 계획을 밝힌 ‘사회신용시스템’의 일환이다.

사회신용시스템은 5개 부문, 30개 영역에서 국민 개개인의 온·오프라인상 신용·금융·사회·시민 활동 정보를 수집한다. 수집된 정보는 정부의 분석에 따라 350~950점 사이의 점수로 평가된다. 높은 점수를 받을 경우 대출을 받을 때 유리할 뿐만 아니라 의료·교육부터 창업 지원까지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해외비자취득·공항 보안대 통과 등에서 우선시될 수 있다. 현재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에서 테스트 버전을 시험 중이며,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일면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취합하고, 이를 이용해 그들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는 ‘국가적 사회통제’의 전형이다. 실제 조 차이 알리바바 부회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온라인 행동이 온라인 신용 점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올바른’ 행동이란 중국 정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에 적합한 행동을 말한다. 중국의 ‘빅 브라더 사회화(化)’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2월 31일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집무실에서 2018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2월 31일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집무실에서 2018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독일의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의 제바스티안 하일만 연구원은 이를 ‘디지털 레닌주의’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해 불완전했던 레닌주의를 보완하고, 이념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정치·경제 체제를 갖추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을 기술적으로 통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 新시대, AI·빅데이터로 권력 잡는다…시진핑의 ‘디지털 레닌주의’

마르크스의 사상을 계승·발전시킨 레닌주의는 1917년 러시아에 세계 최초의 공산정권을 수립한 블라디미르 레닌의 사상이다. 공산주의 사상을 이해하는 소수의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고 노동자들을 이끌어 완전한 공유재산 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신봉자였던 마오쩌둥(毛澤東)은 이념을 앞세워 서구식 문화와 시장경제를 배척했고, 그의 뒤를 이어 집권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이념보다 실용을 내세운 ‘흑묘백묘론’을 채택했다. 흑묘백묘론은 시장경제 등 공산주의에 어긋나는 서구 사상이라도 필요하면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로, 그의 탈이념적 개혁·개방 정책은 이후 장쩌민(江澤民) 등에게 계승돼 왔다.

하지만 시 주석이 강조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중앙집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 당 대회 연설에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이라는 목표를 제시하며, 개인주의·분권주의·자유주의를 배척하고 중국 사회의 기강을 다잡을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신(新)시대’ 진입을 선언하고, 그에 맞는 신기술로 현 체제를 강화한다. 이제까지 시장 경제를 허용해 중국의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해 중앙통제를 굳건히 해온 것처럼 말이다.

중앙집권을 위해 필요한 구색도 모두 갖췄다. 시 주석은 지난해 ‘시진핑 사상’을 당장(黨章·당헌)에 올린 데 이어 19일 헌법에까지 명기했다. 사후가 아닌 생전에, 그것도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사상을 당장과 헌법에 모두 명기한 것은 마오쩌둥 이후 시 주석이 유일하다.

◆ 4차 산업혁명 속도내는 중국…감시공화국 ‘밑거름’

중국이 4차 산업혁명에 올인하는 이유 역시 디지털 레닌주의로 이해할 수 있다. 무인단속 카메라(CCTV)에 인공지능과 범죄 용의자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한 ‘톈왕(天網)’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톈왕은 CCTV에 찍힌 사람, 차량 등을 AI가 분석해 성별이나 연령, 복장, 차량 종류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표시한다. 피사체에 ‘여자-성인-반소매-긴바지’, ‘검은색-세단’ 등 꼬리표가 붙는 식이다.

중국 영상 감시 시스템 ‘톈왕(天網)’. / 유튜브 캡처
중국 영상 감시 시스템 ‘톈왕(天網)’. / 유튜브 캡처
또 위성위치확인 시스템(GPS)과 안면인식 장치 등도 탑재돼 있어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통한 범죄 용의자 탐색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어릴 적 사진으로도 특정인의 현재 모습은 물론 휴대전화와 신분증 번호 등 개인 정보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중국 정부는 현재 2000만대에 달하는 톈왕, 즉 ‘하늘의 그물’을 2020년까지 4억개로 늘릴 계획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사생활 침해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쉐쥔 베이징대학 법학원 부원장은 중국신문망(中国新闻网)과 인터뷰에서 톈왕과 관련, “정부가 수집하는 정보가 공공장소에 대한 정보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생활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범죄사건 해결이 아닌 불순한 목적에 악용될 여지는 분명 있다”고 말했다. 쉬카이 변호사는 “중국 정부기관이 대량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통일된 법 규정이 명확하게 확립해 있지 않아 개인정보권의 큰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톈왕 뿐만이 아니다. 멍젠주(孟建柱) 전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는 지난해 10월 19차 당 대회에서 AI를 이용한 범죄 예방 시스템 개발을 주문하기도 했다. 중국 국무원이 지난해 7월 AI 관련 산업을 2020년까지 1500억위안, 2025년까지 4000억위안까지 키우겠다고 밝힌 지 세달만의 발언이다. 중앙정법위 서기는 공안·검찰·법원·정보기관 등을 총괄하는 중국 안보 총책임자다. 멍 전 서기가 이같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은 AI를 이용해 사실상 전국적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밖에 중국 공안부는 13억 국민을 대상으로 한 안면 인식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시스템을 통해 신분증 사진과 실제 얼굴을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한다는 목표다. WSJ는 지난달 중국 공안이 전국적으로 2020년까지 DNA 샘플 1억개 수집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DNA 데이터베이스에는 이미 5400만명의 정보가 담겨있다.

◆ 온라인은 이미 ‘빅 브라더’ 체제…친구와 채팅하다 체포되기도

온라인 공간은 이미 상당 부분 빅 브라더화가 진행됐다. 중국 법원은 지난달 해외 인터넷 사이트 등에 우회 접속할 수 있게 만드는 VPN 프로그램 사업자에 징역 5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는 ‘만리방화벽’이 구축된 이후 가장 높은 수위의 처벌로, 그동안 VPN에 대해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있던 중국이 단속 강화를 위해 칼을 뽑아든 것으로 보인다.

만리 방화벽은 만리장성과 컴퓨터 방화벽(firewall)을 합성한 용어로, 중국의 인터넷 감시·검열 시스템을 뜻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2015년 이후 폐쇄한 인터넷 사이트 수는 1만3000개에 달한다. 페이스북·유튜브 등 세계 상위 1000개 웹사이트 가운데 135개도 이중에 포함된다.

그런가하면 중국 관영 환구시보에 따르면 인터넷정보판공실은 지난해 9월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와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위챗), 중국 최대 검색엔진 기업인 바이두 등 중국 3대 정보통신기술(IT) 업체에 법정 최고액인 50만위안의 벌금을 부과했다. 음란과 테러, 민족 간 증오를 부추기는 정보와 논평에 대한 검열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개인 간 소통 채널인 모바일 메신저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중국 공인일보는 지난해 9월 베이징 창핑구에 사는 장모(남·31)씨의 예를 보도했다. 장씨는 웨이신으로 친구들과 채팅을 하며 “같이 이슬람국가(IS)에 가입하자”고 농담했다가 한 달 뒤 공안국에 체포돼 기소됐다. 베이징시 제1중급인민법원은 장씨에게 테러리즘을 부추긴 혐의로 징역 9개월에 벌금 1000위안을 선고했다.


PC 버전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