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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20년 전 아내와 딸 잃은 교통사고 트라우마… 명상으로 이겨냈죠"

대구=이정구 기자

입력 : 2017.11.10 15:34

가족과 함께 처음 떠난 미국 여행이 지옥 같은 순간으로 뒤바뀐 건 찰나였다. 1997년 안식년을 얻어 미국 애리조나대 객원교수로 갔던 장현갑(75) 영남대 명예교수는 미국 유학을 앞둔 아들·딸과 여행을 떠났다. 대학 동기로 만나 동고동락한 아내도 함께였다. 그랜드캐니언·옐로스톤 같은 미국의 자연을 즐겼고 아이다호 평원을 지날 땐 다 같이 김광석의 '광야에서'를 불렀다.

장현갑 영남대 명예교수는 “우울증은 사람이 못나서 걸리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창피해할 이유도, 목숨을 버릴 필요도 없다”며 “우울증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일단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마음을 편히 하고 약을 먹으면서 스트레스 면역 체계를 고치면 된다는 뜻이다.
/김종호 기자
장현갑 영남대 명예교수는 “우울증은 사람이 못나서 걸리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창피해할 이유도, 목숨을 버릴 필요도 없다”며 “우울증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일단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마음을 편히 하고 약을 먹으면서 스트레스 면역 체계를 고치면 된다는 뜻이다. /김종호 기자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행복했던 가족의 합창은 끊어졌다. 제자가 운전하던 차가 시속 100㎞ 넘게 달리다 마주 오던 차와 그대로 충돌했다. 장 교수는 죽음을 직감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애타게 불렀지만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검고 뿌연 연기가 걷히면서 피투성이가 된 가족들이 보였지만 밀고 들어온 범퍼에 두 다리가 끼여 꼼짝할 수 없었다. 한적한 평원 지대라 구조대가 올 때까지 1시간 동안 꼼짝없이 아내와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장 교수는 지난 9월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이라는 책을 썼다. 부제로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일에 대한 치유 보고서'를 달았다. 한국심리학회장까지 맡았던 심리학자이지만 그 끔찍한 일이 심리학으로 치유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를 만나 20년 전 사고에 대해 묻자 불교 신자인 그는 불교 용어인 '찰나' 이야기를 꺼냈다.

가족 잃은 트라우마, 명상으로 극복

"지금도 '찰나'라는 단어를 들을 때 가끔 가슴이 미어집니다. 찰나에 운명이 바뀐다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왜 우리 가족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에 그렇게 잔혹하게 찾아와야 했는지, 그 짧은 시간을 계속 곱씹고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아내와 딸의 유해를 싣고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찰나의 순간 하나하나를 후회하면서 허우적댔습니다. '미국에 가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가족과 사이가 나빠서 혼자 여행을 갔더라면, 처음부터 이들과 인연을 맺지 않았더라면' 하고 말이죠.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습니다."

―극복이 되던가요.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하반신이 마비돼 발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4개월 동안은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다시 걷기까지 반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책 한 권을 수십 번 읽었습니다."

―어떤 책이었습니까?

"애리조나 가기 전부터 명상을 통한 심리 치료 연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틈틈이 하버드대 심리학자 조앤 보리센코가 쓴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이 운명처럼 한국까지 따라왔습니다. 사고 나면서 잃어버린 짐도 많은데 이 책은 여권이 들어 있던 피 묻은 가방 속에 함께 있었습니다."

―책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쉽게 설명하면 명상으로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겁니다. 뇌를 분석해 보면 평소 많이 하는 활동에 따라 특정 부위가 발달하게 됩니다. 오케스트라 악기 연주자는 언어와 음악 기능을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이 크게 발달하고, 점자를 쓰는 맹인들은 집게손가락을 지배하는 뇌 부위가 눈에 띄게 확장됩니다. 감정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 분노, 우울 같은 감정과 즐겁고 유쾌한 감정은 서로 다른 뇌 영역과 연결됩니다. 평소 습관과 생각에 따라 그 감정 영역들도 활성화되는 정도가 다릅니다. 명상을 꾸준히 하는 티베트 스님들은 즐거운 감정을 맡는 좌측 전전두피질이 더 발달했습니다. 아내와 딸의 죽음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나간 불행이고, 크게 다쳤지만 아들과 제가 살아 있는 건 남은 두 딸을 위해서도 다행이라고 여기며 마음을 다잡고 재활 치료와 명상을 반복했습니다. 지나간 불행 대신 현실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마음을 튼튼하게 했습니다."

심리학자 남편에게 정신치료 권한 아내

장 교수가 명상을 처음 시작한 건 사고로 떠난 아내 정방자 대구가톨릭대 교수 때문이었다. 대학 동기로 만난 아내는 든든한 동반자였다. 수학에 약해 통계학 수업에 애를 먹던 장 교수가 방학 동안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조른 게 인연이 됐다. 형편이 어려워 셋방살이로 신접살림을 시작했지만 서로 연구를 도우며 함께 심리학자가 됐다. 장 교수가 대학교수로 자리 잡은 40년 전 아내는 갑자기 그에게 "연구도 좋지만 우선 정신 분석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다"며 치료를 권했다. '심리학 전공 교수가 정신분석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니….'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뇌과학과 정신약리학을 연구하던 그는 자존심 때문에 아내의 조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따금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과 불안이 있었지만 학자들이 으레 겪는 연구 스트레스로 생각했다.

―그래서 치료를 안 받았나요?

"인정하긴 싫었지만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아내가 더 끈질기게 권유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반년 정도 상담 치료를 받았는데, 그때쯤 되니 제 기억 맨 밑바닥에 있는 치부까지 드러내야 해서 중간에 그만둬버렸습니다."

―뭐가 그렇게 드러내기 싫었던 건가요.

"제가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상처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6·25전쟁 피란길에 겪었던 전투기 폭격, 왕따로 지냈던 학창 시절 외톨이 경험처럼 잊으려 했던 트라우마가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어떤 트라우마였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겪은 전쟁은 끔찍했습니다. 피란길에 아버지가 인민군에 끌려간 일도 있었고, 저는 동네 아이들과 인민군 장교가 가르치는 김일성 찬양가를 배웠습니다. 폭격을 받아 학교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고 집집마다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래도 잘 극복한 편이었습니다. 전쟁은 혼자 겪는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가장 큰 문제는 외톨이로 지냈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왕따였다고 하셨는데요.

"남들보다 한 살 어리게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동급생들은 보통 한두 살 많았는데 저는 체구도 작아서 얻어맞는 일이 많았습니다. 학교 친구는 나를 위협하는 존재로 각인됐습니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는 경북 왜관 쪽에서 지역 유지였던 집안 덕을 봤는데, 가세가 기운 다음 전학 간 대구 시내 중학교에선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선배들이 강제로 동급생과 싸움을 붙여서 얻어맞게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초 작업을 나갔는데 죽이겠다며 낫으로 위협하는 아이들도 있었고요. 학교에 가면 굴욕감과 공포가 들었습니다. 혼자 하숙 생활을 할 때였는데 철저히 외톨이가 됐습니다."

―전쟁보다 끔찍한 기억이었습니까.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하면,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격리성장과 행동장애'였습니다. 성장기 동물들이 동료 없이 혼자 자라게 되면 인지·정서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는지 실험했습니다. 실험 결과 인지 능력에선 공간 기억 능력이 특히 떨어졌고, 정서적으로는 낯선 동물과 마주쳤을 때 지나친 공격성과 과민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같은 종 동물을 만나면 붙어 있으려는 집착을 보였고요. 격리 성장은 사람으로 치면 '은둔형 외톨이'입니다. 실험에서 동물들이 보인 증상은 회피성 성격장애와 비슷하고요. 치료를 받아 보니 저는 의존성 성격장애였는데 원인 대부분이 유년기 외톨이 경험이었습니다."

―논문이 그 트라우마와 무슨 상관인가요.

"논문을 쓸 때는 연구자 관점, 제3자 관점이었습니다. 실험 주제와 제 트라우마를 연결해 생각하지 못했죠. 상담 치료를 받다 보니 섞이지 못하고 혼자 보냈던 유년 시절 아픔이 생각보다 훨씬 큰 상처로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박사 논문도 결국은 제 상처와 문제를 찾는 실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 누르면 나중에 크게 폭발

사춘기 외톨이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시작했던 연구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장 교수를 이 분야 권위자로 명성을 얻게 했다. 격리성장과 행동장애, 소외 문제를 다룬 연구는 국내외에서 모두 선구적인 연구였다. 장 교수는 1960년대부터 심리학과 뇌과학·생리학을 같이 연구하며 생리심리학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인생을 되돌아보며 쓴 책에 자기 자랑 대신 왜 상처와 부끄러운 기억을 잔뜩 털어놓았는지 물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세상 떠난 아내도 저 몰래 상담 치료를 2년 정도 받았습니다. 상담심리가 전공이라 공부를 하러 가는 줄 알았는데 치료였다고 하더군요.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밝히긴 어렵습니다. 제 상처가 어떤 문제 때문에 생겼고 어떤 치유 방법으로 차차 아물었는지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마다 상처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제가 겪은 교통사고는 일반적인 일이 아닐 겁니다. 그래도 지금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겪는 문제는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속담이 격언처럼 내려오는데 지금 사회에는 맞지 않습니다. 자신이 앓는 스트레스를 적절히 드러내지 않아 더 큰 병을 얻는 경우가 많죠."

―참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 조절장애가 늘고 있다고 하는데요.

"충동조절장애는 단순히 참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아닙니다. 스트레스는 발생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하게 배출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조절장애는 스트레스를 드러내야 하는 시점을 통제하지 못해 부적절한 상황에서 필요보다 더 크게 폭발하는 게 문제입니다."

장 교수는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면 비슷하겠지만 특히 자신 인생에 굴곡이 많았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불운했던 사고도 있었고 전쟁과 민주화 시대도 겪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1등'만을 강요하고, 강요받으며 만든 상처들이 이제는 우리 사회에 대물림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손자·손녀들에게 "1등은 하지 말고 5등에서 10등이 가장 좋다"고 항상 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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