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9.18 18:00

헝가리 동부 도시 데브레첸 시내에서 차로 약 20분을 달리자, 드넓은 북부 산업단지 한가운데 BMW 그룹의 신공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심과는 사뭇 다른 공업지대의 분위기 속에서도 은빛으로 물든 2층 건물은 깔끔하고 현대적인 인상을 풍긴다.
무엇보다도 주차장에는 전기차 충전기가 촘촘히 설치돼 있고, 수백 면을 넘는 주차 공간이 이미 가득 찬 모습은 이곳이 BMW의 미래형 전기차 생산 거점임을 단번에 실감케 한다. 현장에서는 곤색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그 작업복의 색상은 공장 안에 전시된 BMW 뉴 iX3의 짙은 곤색 차체 색과도 꼭 닮아 있다.

지난 9일(현지 시간), 세계 각국에서 모인 100여 명의 기자단 앞에 처음 공개된 BMW 그룹 신공장 '데브레첸 공장'은 단순한 자동차 공장이 아니었다. BMW 그룹이 'i팩토리' 철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영한 전동화의 총본산, 미래 제조업의 테스트베드였다. 총 400만㎡ 부지 위에 4개의 시설로 조성된 이 공장은 8만명 이상을 고용할 수 있으며 연간 최대 250만대 생산이 가능한 규모다.
데브레첸 공장은 올 하반기부터 BMW의 차세대 전동화 플랫폼 '노이어 클라쎄'의 첫 양산 모델 뉴 iX3를 생산할 예정이다. 새로운 제품군을 의미하는 노이어 클라쎄는 BMW의 전동화 전략을 상징하는 프로젝트다.
밀란 네델코비치 BMW 그룹 이사회 생산 담당은 "뉴 iX3의 양산 개시는 자동차 제조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며, "데브레첸 공장은 BMW의 미래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어 "데브레첸 공장은 린 생산(LEAN, 간소화된 생산 구조), 지속 가능성, 디지털화, 인재라는 네 가지 핵심 가치가 모두 집약됐다"고 덧붙였다.

화석연료 '제로'… 태양광 기반 탄소중립 공장
공장의 핵심은 단연 '친환경'. 정상 가동 시 화석 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BMW 그룹 최초로 100% 재생에너지로만 운영되는 이 공장은 설계 단계부터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도장 시설은 이러한 지속 가능성의 핵심이다. 도장 공정은 일반적으로 180도 이상의 고온이 필요한 에너지 다소비 공정으로, 대부분의 자동차 공장에서는 화석 연료인 가스를 사용한다. 하지만 데브레첸 공장은 태양광, 풍력, 지열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이를 대체한다.
공장 내에는 무려 50만㎡ 규모의 태양광 발전 단지가 구축돼 있으며, 이는 전체 연간 에너지 수요의 약 25%를 충당한다. 생산하지 않는 시간에 남는 잉여 에너지는 열에너지 저장 시스템에 저장돼 향후 활용된다. 도장 시설에는 에너지 회수 시스템도 적용돼, 회수된 폐열을 온수 회로 예열 등에 재활용함으로써 최대 10%의 추가 에너지 절감이 가능하다.
그 결과 뉴 iX3 한 대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CO2e(이산화탄소 환산량)는 약 80kg으로, 기존 내연기관 차량 대비 약 3분의 2 이상 줄일 수 있다. 데브레첸 공장만 놓고 보면 34kg 수준까지 낮아진다.

"지속 가능성의 롤모델"… BMW 미래 공장의 기준 되다
한스-피터 켐저 BMW 그룹 데브레첸 공장장은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가장 간소화되고 효율적인 미래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며, "데브레첸 공장은 BMW 생산 전략의 미래이자, 자동차 산업 지속 가능성의 새로운 기준"이라고 밝혔다.
공장 주변에는 8000 그루의 나무와 8만5000㎡ 규모의 야생화 초원이 조성돼 있으며, 이 생태 공간은 벌과 다양한 동물의 서식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네델코비치 생산 담당은 "지열 활용이 어려운 데브레첸 지역 특성을 고려해 태양광 중심의 에너지 전략을 채택했다"며, "건설 단계부터 이를 염두에 둔 결과, 가스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효율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데브레첸 공장은 단순한 생산 시설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 모빌리티와 제조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배터리부터 조립까지… 디지털화·자동화로 비용 절감 및 효율 향상
공장 투어의 시작은 고전압 배터리 시설이었다. 데브레첸 공장은 BMW 전 세계 공장 중 최초로 6세대 고전압 배터리 양산을 시작한 곳이며, '팩 투 오픈 바디(Pack to Open Body)' 콘셉트에 따라 배터리를 차량 하부 구조에 통합하는 생산 방식을 채택했다.
배터리는 시설 내에서 자체 생산 후 곧바로 조립 라인으로 공급되는 시스템이 적용, 별도의 공급 창고가 필요 없을 정도로 공정이 최적화돼 있다. 실제로 로봇 팔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으며, 조립 라인까지는 자율주행 토잉 차량과 AGV(무인 운반차)가 부품을 자동 운반한다.
또한, 전체 생산 과정에는 '가상 공장'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실제 설비를 건드리지 않고도 디지털 환경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계와 공정 시험이 가능, 생산 시간 단축 및 비용 30%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

"컨베이어 없는 공장"… 유연한 모듈 조립으로 미래 대비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조립 시설이었다. 독일 라이프치히 공장에서 영감을 받은 '손가락 구조(finger structure)' 설계가 적용됐다. 이는 부품의 80%를 조립 라인에 직접 공급 가능하게 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다.
눈에 띄는 점은 조립 시설에 일반적인 자동차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컨베이어가 없다는 것이다. 공정 자체를 모듈화하고 배선 부품 설치를 간소화해 보다 유연하고 빠른 생산이 가능하도록 했다. 실제로 뉴 iX3에 적용된 와이어 하네스는 기존 모델 대비 확연히 짧고 얇아져, 생산 복잡성도 크게 줄었다.
생산 공정의 전면 디지털화는 조립 효율성을 더욱 향상시킨다. BMW 그룹이 자체 개발한 IT 플랫폼 AIQX(Artificial Intelligence Quality Next, AI 퀄리티 넥스트)는 i팩토리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AIQX는 생산 라인 곳곳에 설치된 센서와 카메라 시스템을 활용해 품질 관리 공정을 자동화한다. 이때 AI는 데이터를 분석해 라인에 있는 작업자에게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제공한다. 앞으로는 생산 라인의 차량도 산업용 사물인터넷(IoT)의 연결 주체로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차량은 스스로 자체 분석을 수행하고, 공장 직원들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며, 탑재된 카메라와 정보기술 시스템 등의 도구를 사용해 관련 메시지를 자동으로 공유하고 기록할 수 있다. 조립홀의 설비와 도구, 부품 및 그리고 모든 BMW 차량은 이미 BMW 생산 시스템과 디지털로 연결돼 있다.

로봇이 일하지만, 사람의 역량이 중심
데브레첸 공장에는 현재 1000여 대의 로봇과 2000명 이상의 인력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다국적 인재들이 포함돼 있다.
네델코비치 생산 담당은 "현장의 인력 다수는 단순 조립이 아니라 로봇을 관리·통제하는 디지털 업무를 맡고 있다"며, "글로벌 각국에서 온 인력들이 모여 새로운 혁신을 실험하고, 여기서의 성과는 다른 지역 공장으로 전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방문한 현장에서는 다양한 국적·연령대 근로자들이 눈에 띄었다. 공장 내 카페테리아에서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 출신 직원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또한, BMW 관계자는 이곳의 로봇 자동화 수준이 글로벌 최정상급이라고 강조한다. 네델코비치 생산 담당은 "우리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미국 FIGURE 등 다양한 로봇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자동화는 단순히 특수 장비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될 것이고, 이를 위해 전문 인력과 글로벌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사례가 엔비디아와 협업해 구축한 '디지털 트윈' 시스템이다. 실제 공장을 가상 공간에 구현해 생산 공정을 시뮬레이션·최적화할 수 있는 기술로, BMW가 차세대 생산 혁신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데브레첸 공장은 BMW 전체 네트워크 중에서도 단일 생산기지에 종속되지 않은 최초의 독립형 공장이다.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미국, 독일 등에서 축적된 생산 전문성이 이곳에 집약돼 있고, 동시에 이곳의 성과는 다시 전 세계로 공유된다. 한마디로, BMW 글로벌 생산의 '허브'이자 '출발점'인 셈이다.

네델코비치 생산 담당은 "데브레첸에서 시작된 이 혁신은 BMW의 모든 글로벌 공장으로 확산될 것"이라며, "새로운 인재, 새로운 기술, 새로운 생산 방식이 BMW의 미래를 뒷받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