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시승기] 매력적이지만..저평가된 플래그십 세단, 푸조 508 GT

데일리카 박홍준 기자

입력 : 2018.01.10 16:41

수정 : 2018.01.10 16:41

“폭스바겐 파사트를 기다리는 게 나을까,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보는 게 나을까?”

오랜만에 찾은 학교에서 교수님은 기자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평소 주행 거리가 많거니와 당신께서 타고 계시는 캐딜락 1세대 CTS가 많이 낡아서다.

공교롭게도 이 날 기자는 푸조의 플래그십 세단 508 GT를 시승하고 있었다. 선뜻 508을 권해드렸더니, 교수님은 푸조에서 이만한 사이즈의 세단이 나오는지를 모르셨던 모양이다.

이렇듯 508의 존재감은 다소 미미해졌다. 3000만~4000만원대 세단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에도, 시장에서 선택의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508은 이렇게 저평가 될 만한 차량일까, 유독 추웠던 어느 날 푸조의 플래그십 세단 508 GT를 시승했다.

■ 모험 대신 안정을 택한 디자인.

준중형 세단 407과 준대형 세단 607의 통합 후속모델인 508은 출시 초기 전형적인 푸조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주목받았다. 좋게 표현한다면 푸조 고유의 디자인을 담았고, 나쁘게 표현한다면 플래그십 특유의 중후한 맛은 덜했다.

현재 한불모터스가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모델은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램프류의 디테일과 전면부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모습이다.

직선형으로 곧게 뻗은 라디에이터 그릴은 근래 보여지는 신차에 비해 다소 좁게 빚어졌지만, 크롬포인트와 사자 형상의 엠블럼은 강한 존재감을 보인다.

사각형 일색으로 빚어진 풀 LED 헤드램프는 정교한 이미지와 함께 이 차의 중후함을 더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범퍼 라인을 따라 자리잡은 거대한 주간 주행등 또한 이 차의 존재감을 한 층 강화한다.

가격을 맞추다 보니 다소 아쉬운 휠 사이즈를 갖는 다른 경쟁 차종들과 달리 큼지막한 18인치 휠은 만족도와 존재감 모두를 충족한다.

특별한 기교 없이 처리된 측면부는 깨끗한 인상을 주는 한편 어느 정도 클래식한 모습도 함께 보여진다. 균일하게 반사되는 빛 탓에 햇빛이 쨍쨍할 때 바라보는 측면부 디자인은 제법 고급스럽다.

후면부 디자인은 다소 낮선 형상이지만, 푸조의 아이덴티티 그대로를 담아냈다. 번호판이 범퍼 부위에 위치한 탓에 차체는 한층 커보이며, 곧게 뻗은 트렁크 리드 라인과 정 중앙에 자리한 푸조 엠블럼 또한 차체를 더 커보이게 하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 크롬 몰드를 더 추가했다면 차체 사이즈는 훨씬 커 보이겠지만, 프랑스차 특유의 여유있고 독특한 미적 감각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이 배려된 것으로 보인다.

■ 0.5세대 뒤쳐진 인테리어 디자인은 아쉬워

508이 경쟁하던 폭스바겐 파사트와 인테리어 디자인을 비교한다면 전혀 꿀릴 것이 없지만, 근래 나온 경쟁사의 세단들, 그리고 푸조의 신차들을 본다면 다소 뒤쳐진 세대의 디자인이다.

콤팩트 스티어링 휠과 운전자의 시야에 맞춰진 클러스터로 대표되던 아이콧핏 인테리어는 508에선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508의 스티어링 휠은 여타 푸조 차량들을 시승할 때 보다 유독 크게 느껴진다. 그나마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있다는 점은 위안이다.

그러나 갖춰져야 할 사양들은 모두 갖추고 있다. 마사지 기능이 탑재된 나파가죽 시트의 촉감은 제법 부드럽고, 인스트루먼트 패널 곳곳의 마감 처리와 견고함도 제법 만족스럽다. 이 급의 세단을 찾는 고객들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다만 실내 수납공간은 다소 부족하다. 기어노브 주변에 위치한 수납 공간들은 다소 협소해서 스마트폰 등을 일시적으로 두기엔 다소 비좁거니와, 센터 콘솔 박스 공간도 경쟁 차종 대비 깊다고 할 수만은 없다.

2열 공간의 거주성은 부족함이 없다. 독립적인 냉난방 기능과 별도의 시거잭을 마련해 2열 편의성을 강화한 점은 강점이다. 시트 등받이의 각도는 충분히 기울어져 있는 수준이거니와 레그룸도 넉넉하다.

■ 2.0리터 엔진의 만족스러운 출력

508 GT는 2.0리터 블루 HDi 디젤엔진을 장착, 최고출렫 180마력, 40.8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여기에 EAT6 6단 자동변속기가 결합돼 13.2km/ℓ(고속 14.2km/ℓ, 도심12.5km/ℓ)의 연비 효율을 보인다.

수치상으로 보여질 때엔 특별해보이지 않지만, 체감되는 성능은 충분하다. 특히 40.8kg.m에 달하는 최대토크는 도심 주행 및 고속 주행에서의 가속 상황 시 충분한 체감 출력을 제공한다.

넉넉한 가속성능 탓에 수치상으로 표기된 180마력이라는 의미는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 보다는 더 넉넉하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넉넉한 출력이 푸조 고유의 핸들링 재미와 만나면 자연스레 입가엔 미소가 만개한다. 308이나 208 같은 잽싼 핸들링 성능을 보이진 않지만, 중형차 치곤 제법 기민한 움직임이다.

편안한 주행을 염두한 탓인지 즉각적인 느낌 보다는 한 템포 쉬어가는 듯 한 느낌이지만 조향되는 느낌만은 정확하다. 오히려 여기서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면 이어지는 장거리 주행에서는 다소 피곤했을지 모른다.

하체의 거동도 제법 센스있다. 승차감도 제법 나쁘지 않고 노면의 잔진동을 걸러내는 능력이 제법인데, 고속에서의 거동이 제법 든든한 모습이다. 다소 꿀렁이는 듯 한 움직임이 느껴지지만 그 기본만큼은 단단함이 내장된 느낌이다.

이 급의 차량을 구매하는 고객들이 반드시 고려하는 ‘정숙성’도 만족스럽다. 디젤엔진 특유의 소리가 저 너머 들려오긴 하지만, 주행 중 느껴지는 소음이나 진동은 크지 않은 편이다.

다만 GT라는 이름에 걸맞는 재밋거리가 없는 것은 아쉽다. 스포츠 모드로 변경했을 시 308 GT, GT라인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가상의 엔진 사운드를 송출한다면 운전의 재미는 더 배가됐을텐데, GT 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이 차가 508 라인업의 최상위 등급에 위치한다는 걸 확인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 508 GT, 국산 준대형차의 다른 대안

다시 앞서 언급된 부분으로 돌아가자면, 508이 가진 시장의 존재감이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4000만원대의 세단을 찾으라면 국산 준대형 세단 혹은 일본 중형 세단을 선택하는 탓에, 그리고 시장에 출시된 지 제법 오래된 모델인 탓에 508의 존재감이 미미한 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차는 특별함을 갖길 원하는 고객들에겐 제격이다. 앞서 언급한 기자의 교수님 또한 그랜저를 망설이는 이유에 대해 ‘너무 많아서’를 이유로 들었다. 당시 출시된 다른 수입차들을 두고 CTS를 샀다는 점만 봐도 더욱 그렇다.

카탈로그를 펼쳐 놓고 일일이 비교한다면 508은 그랜저에게 절대적인 열세지만, 푸조만이 가진 특유의 운전재미, 높은 연비 효율성, 그리고 희소성은 그랜저 일색인 국내 도로에서 높은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다.

시승한 508 GT의 가격은 459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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