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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우월주의 KKK 등 6000명 시위… 반대파 향해 차량 돌진

정지섭 기자

입력 : 2017.08.14 03:04

12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 동남쪽 4번가. 백인우월주의자 집회에 맞서 인종차별 반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던 이들을 향해 회색 '닷지 챌린저' 승용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돌진했다. 거리는 비명과 울음소리로 아수라장이 됐다. 32세 여성 해서 하이어가 숨졌고, 최소 19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이날 시위 현장을 공중 순찰하던 경찰 헬기도 원인 모를 이유로 추락해 40대 경관 2명이 순직했다. 수도 워싱턴DC에서 188㎞ 떨어진 조용한 대학 도시가 순식간에 전쟁터처럼 변한 것이다. 용의자는 오하이오주에서 온 백인우월주의자 알렉스 필즈(20)로, 현장 부근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12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 시위대에 맞서 반대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향해 승용차가 돌진하자 사람들이 튕겨나가고 있다. 차량에 받힌 사람 중 32세 여성이 숨지고 최소 19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시위대들 사이로‘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구호가 적힌 피켓이 보인다. /AP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 시위대에 맞서 반대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향해 승용차가 돌진하자 사람들이 튕겨나가고 있다. 차량에 받힌 사람 중 32세 여성이 숨지고 최소 19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시위대들 사이로‘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구호가 적힌 피켓이 보인다. /AP 연합뉴스
백인우월주의자가 인명 살상 테러를 저지른 것은 흑인 9명이 희생된 2015년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 이후 2년여 만이다. 미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불거진 최악의 인종 갈등"이라고 했다.

백인우월주의자들, 리 장군 동상 철거 방침에 발끈

'큐 클럭스 클랜(KKK)'을 비롯해 '프라우드 보이스' '전통주의 청년연맹' 등 미 전역의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 회원 6000여 명(경찰 추산)은 지난 11~12일 샬러츠빌에서 집회를 열었다. 샬러츠빌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의 군사 요충지였던 곳으로, 작년 대선 때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80%에 이를 정도로 진보 성향이 강하다.

시위 촉발한 '리 장군 동상' - 12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 해방공원에 세워진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앞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시위 촉발한 '리 장군 동상' - 12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 해방공원에 세워진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앞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앞서 시 정부는 지난 2월 주민 의견 수렴을 거쳐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지도자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월에는 리 장군과 토머스 조너선 잭슨 장군의 이름을 딴 시내 공원 두 곳의 이름을 '해방(emancipation)'과 '정의(justice)'로 바꿨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이에 반발해 '유나이트 더 라이트(Unite the Right)'라는 이름의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버지니아대 캠퍼스와 리 장군 동상 부근을 행진하면서 "너희는 우리를 바꿀 수 없다" "피와 흙을 달라"고 외쳤고, 친(親)나치 구호도 등장했다고 현지 TV 방송 WWBT는 전했다. 1960년대 악명을 떨쳤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듯했다.

여기에 맞서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등을 포함한 흑인 인권단체 회원들이 현장에 나와 맞불 시위를 벌이면서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시 당국은 시위대 간 유혈 사태가 우려되자 시내 곳곳에 경찰 병력을 배치했고, 주(州) 차원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런 상황에서 12일 알렉스 필즈가 승용차를 몰고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다. CNN은 "필즈가 몇 주 전 자신의 어머니에게 백인우월주의 시위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매체 데일리 비스트는 "필즈가 공화당원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유혈 참사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로스앤젤레스 중심가에 시민 수백여 명이 백인우월주의단체들을 비난하는 시가행진을 벌이는 등 인종 갈등이 전국 각지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애매한 대응 논란

미국 내에서는 백인우월주의단체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테리 매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는 "이 위대한 연방국가에 당신들은 필요치 않다"며 "부끄럽지도 않은가. 집으로 가라"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어느 누구도 피부 색깔이나 배경, 종교 때문에 다른 이들을 증오해선 안 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12일 트위터 글에서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증오를 규탄해야 한다"며 "순직한 버지니아 경찰 2명과 (차량 돌진 사고로) 숨진 여성과 부상자들에게 깊은 애도의 말을 전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날 뉴저지주(州) 골프장에서 열린 참전용사 지원 법안 서명식에서 "우리는 강력한 어조로 여러 편(many sides)에서 벌이고 있는 증오와 폭력을 비난한다. 이 문제는 내 임기의 문제도,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임기만의 문제도 아닌 우리나라의 오랜 문제"라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취지로 비칠 수 있는 언급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우월주의단체가 당신의 지지층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묵살한 채 서명식장에서 퇴장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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