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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승기] 깊은밤, 전기 택시에서 나눈 이야기

입력 : 2016.12.07 06:16

르노삼성자동차 SM3 Z.E 택시, 서울시에서 60대를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SM3 Z.E 택시, 서울시에서 60대를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2년간의 시범 사업이 내년 9월에 끝나는데 그때 다시 사라고 하면 이제 전기차는 안탈껍니다.”

날이 춥다. 21번째 절기 ‘대한’이 코앞이다. 퇴근길 선배와의 만남은 족발에 뜨끈한 김치찌개로 시작했다. 소주가 한 잔 두 잔 들어가더니 어느덧 병으로 세어야했다. 밤이 늦었다. 집으로 돌아간다. 길에 나와 지하철을 타는 일행을 보내고 버스정류장 중앙차로로 향하는 건널목에 섰다. 하늘색 차가 눈에 띈다. 문짝에 ‘친환경전기택시’라고 써있다. 순간 머릿속에는 ‘이차라도 시승하자’ 생각이 스쳤다. 일명 ‘김영란법’ 때문이라며 시승차 씨가 마른 것도 이유였다.

대전에서도 운영하는 전기 택시
대전에서도 운영하는 전기 택시
올라타자마자 행선지를 말했다. “안암동이요”, “네” 짧은 대답을 한 택시기사는 달리기 시작했다. 밤 11시에 가까워지는 시간, 도로는 한산했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전기차는 조용했다.

뒷자리에서 본 전기차는 일반 택시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차종은 르노삼성자동차의 SM3 Z.E. 힐끗 보이는 운전석 계기반이 전자시계처럼 디지털로 된 것 말고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전기차로 택시하시니까 어떤가요?” 택시를 타고 대화하는 것을 평소 꺼려하는데 오늘은 먼저 시작했다. 아마도 술김에 나온 용기이자 한동안 시승기를 쓰지 않은 자책감이 이 밤 동승기 취재를 시작하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어느날 밤 처음 탔던 르노삼성 SM3 Z.E 택시.
어느날 밤 처음 탔던 르노삼성 SM3 Z.E 택시.
“여유 시간이 많아서 좋아요” 무척이나 긍정적인 대답이다. “왜요?”라고 물으니 충전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루에 다섯 번 정도 충전하는데 한 번에 30~40분씩 걸려요.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한다고 해도 서너 번은 주변 공원을 한 바퀴 걷는다거나 마트를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내거든요”, “하루 종일 택시에 앉아있었는데 오히려 많이 걷고 여유 시간이 생기니 더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어느 일간지의 전기 택시기사 인터뷰에서는 충전을 자주 하는 상황에 대해 ‘시간이 돈인데 아깝다’라고 평가한 것과 같은 상황이지만 대하는 자세가 180도 다르다.

SM3 전기 택시는 요즘과 같은 겨울철에 더 주행거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제원상은 가득 충전했을 경우 100km를 훌쩍 넘겨야하지만 실제 체감 주행거리는 70km 남짓. 여름에는 그래도 100km를 조금 넘기니 충전 횟수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자동차가 제주도에서 배터리 교체 시스템에 대해 시연하고 있다. 당시 르노삼성은 충전 시간을 없애기 위해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을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르노삼성자동차가 제주도에서 배터리 교체 시스템에 대해 시연하고 있다. 당시 르노삼성은 충전 시간을 없애기 위해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을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동교동을 출발한 택시는 어느덧 광화문을 지난다. 가속은 시원시원하다. 신호대기에서 1등으로 출발한 택시는 앞뒤 그룹의 중간에서 달린다. 도심 신호체계가 만들어낸 중간 지점이고 주로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이 좋아하는 지점이다.

SM3는 쏘나타 등 일반적인 중형급 택시보다 작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SM3는 준중형이고 쏘나타는 중형이다. ‘사실상 중형’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준중형이란 구분은 우리나라에만 있다. 소형차 값으로 중형의 만족감을 제공하겠다는 일부 자동차 회사의 포부가 담긴 마케팅 용어지만 이제는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뒷자리에 앉으면 다리를 꼬아도 되던 중형차와 달리 SM3는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길어야 30분, 1시간을 타는 승객들은 괜찮겠지만 하루 종일 타야하는 택시기사는 어떻게 느낄까. “불편한건 없어요. 처음에는 조금 좁아져서 답답했는데 적응하니까 왜 큰 차를 타야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진동이나 소음이 없어서 피로도는 훨씬 덜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분 좀 수상하다. SM3 전기 택시를 이렇게 호평하다니. 다음에도 또 이 차를 살 것인가. 그치지 않는 호기심으로 또 질문을 이어갔다.

영광의 영수증. 확률상으로 천번쯤 택시를 타면 한 번쯤 만날 수 있는 전기 택시의 영수증이다.
영광의 영수증. 확률상으로 천번쯤 택시를 타면 한 번쯤 만날 수 있는 전기 택시의 영수증이다.
“이 차는 서울시에서 60대 운영하는 시범사업에 들어간 겁니다. 4200만 원 정도 하는 차 값의 상당 부분을 보조받았어요. 이래저래 빼고 나니 700~800만 원 정도 낸 것 같아요. 쏘나타 택시의 절반 값이에요. 빌라에 사는데 1층에 충전시설 설치도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서 했습니다. 돈이 좀 더 들긴 했지만 다 합쳐도 LPG 택시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2년간의 시범 사업이 내년 9월에 끝나는데 그때 다시 사라고 하면 이제 전기차는 안탈껍니다.” 반전이다. 그렇게 칭찬을 하더니 다시 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충전도 괜찮고 주행거리 짧아도 괜찮은데 손님들하고 실랑이가 종종 일어납니다. 주행거리가 20km 남았는데 손님이 먼 곳을 가자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승차거부를 해야 합니다. 이게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니 차가 좋아도 스트레스를 받게 마련이에요. 서울시에서도 전기 택시는 승차거부 신고 대상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르노삼성자동차 SM3 Z.E
르노삼성자동차 SM3 Z.E
서울에서 60대 운행하는 전기 택시를 타는 것은 확률로는 1000대 1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승객들에게 전기차 충전하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매번 해도 돌아오는 똑같은 질문과 답변은 정신노동의 영역이다.

택시가 종로를 지나면서 조금 막힌다. 1차로는 그래도 뚫려있다. 이제 진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 차례다. 돈 이야기다.

“전기 택시를 운행하니 수입이 좀 달라지나요? 승차거부, 주행거리, 충전 이런 게 다 돈이잖아요”

택시기사의 이번 대답은 명료했다. “LPG 택시 몰 때에는 예를 들어 하루 15만 원 정도 벌면 LPG 값으로 5만 원을 써야합니다. 그러면 결국 10만 원 버는 것이지요. 개인택시라 다른 돈은 안 들어간다고 해도 엔진오일 갈고, 고장 나면 고치고 그런 게 추가로 들어가는 돈이고요. 그런데 전기 택시는 10만원을 벌어도 얼마든지 비용을 줄일 수 있어요. 서울시내 곳곳에 공공기관에서는 아직도 무료 충전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아요. 또, 집에서 퇴근하고 꼭 충전을 하는데 한 달에 많아야 5만 원 정도 전기요금이 나옵니다. 그리고 엔진이 없으니 오일도 없죠. 지금까지 한 7만km 정도 주행했는데 앞 타이어 두 짝 바꾼 게 전부에요. 결국 조금 덜 일하고 비슷한 벌이를 유지하는거에요”라고 말한다.

술먹고 밤에 기름기 묻은 폰카로 찍으면 이렇게 노란 레이저광선이 나온다. 카메라는 깨끗하게 관리하자.
술먹고 밤에 기름기 묻은 폰카로 찍으면 이렇게 노란 레이저광선이 나온다. 카메라는 깨끗하게 관리하자.
다시 말하면 버는 금액이 줄어도 쓰는 금액을 아낄 수 있으니 결국 비슷한 수준이란 이야기다. 또, 충전하면서 시간을 때워야하니 결과적으로 운행 시간이 줄고, 원치 않았던 여유 시간이 생겨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전기차 기사를 쓸 때마다 나오던 배터리에 대한 걱정이 떠올랐다. 1년 반 만에 7만km나 달리면 휴대폰처럼 배터리 성능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걱정에서다.

“애초에 2년 운행하면 르노삼성자동차에서 새 배터리로 교체해주기로 했어요. 아직 교체를 받지 않은 상태인데 처음하고 비슷한 주행거리가 나오긴 합니다. 2년 계약이 끝나는 내년 9월에 차를 팔기 직전에 새 배터리로 교환받아서 팔꺼에요.”

그랬다. 스마트폰이나 전기차나 똑같았다. 요즘 스마트폰도 중고 거래하기 직전에 AS나 리퍼를 싹 받는다더니 전기차도 배터리 새것으로 교체해서 판매한단다. “벌써 중고차 업자들이 연락을 하는데 700만 원 정도를 부르더라고요. 배터리 싹 갈고 그것 보다는 더 받아볼 계획이에요. 가정용 충전기도 이전 설치비가 100~200만 원 정도인데 한꺼번에 팔아볼랍니다”

서울 시내를 가로지른 택시는 목적지인 안암동에 거의 도착했다. 계기반을 훔쳐보니 동교동에서 가득 찼던 배터리 표시가 이제 한 칸이 줄었다. “어휴 겨우 이정도 거리를 왔는데 배터리가 줄었네요. 충전하러 가셔야겠네요” 전기차 이야기는 ‘기-승-전-충전’으로 마무리됐다. “이제는 서울 어디에 충전소가 있는지, 가는 경로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빠삭하게 알고 있어요. 조금 더 타고 가다가 밤에 충전해야지요. 아니면 일찍 집에 들어가려고요. 충전 핑계로 일찍 집에 들어가니 집사람이 좋아해요”

교통카드를 좌석 중앙 단말기에 대고 요금을 냈다. 영수증을 보니 동교동에서 승차시간은 밤 10시35분. 안암동의 하차시간은 밤 11시07분이다. 주행거리는 11.22km. 요금은 1만2300원. 32분간의 짧은 동승 겸 인터뷰는 이렇게 끝났다.

지난 3일 국회는 내년 예산 심의 과정에서 환경부의 전기차 보급 예산을 크게 늘렸다. 두 배 가까이다. 전기차의 구입 보조금과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은 올해 1485억 원에서 내년 2642억 원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법 개정으로 12월부터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아닌 관리소장의 허가만으로 충전 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내년에는 전기차를 사 볼까? 중고도 괜찮겠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술이 깬다. 최초의 음주 후 시승기다.

[더드라이브 이다일 기자=dail.lee@thedr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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