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9.29 19:15
차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바깥의 소음이 한순간에 멀어졌다. 시동을 걸고 천천히 움직였지만 차체는 서두르지 않았다. 속도를 높여도 실내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느낌보다 차 안이 조용하고 안정적이라는 인상이 먼저 다가왔다.
레인지로버 SV는 V8 엔진을 품은 고성능 SUV다. 하지만 직접 타보면 '빠르다'는 느낌보다 '편안하다'는 쪽에 가까웠다. 도심에서는 요철을 부드럽게 넘었고, 고속도로에서는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체가 노면에 차분하게 붙어 있는 느낌이 강해졌다.
특히 이번 시승차는 4인승 모델이다. 2열에 앉아보면 일반적인 SUV와는 확실히 달랐다. 독립형 시트에 몸을 기대고 다리 받침대를 펼치자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이 떠올랐다. 차가 움직이는 동안에도 좌석이 몸을 안정적으로 받쳐줬다. 저속에서나 고속에서나 차체 움직임은 차분했고, 장거리 이동을 해도 편안함이 이어졌다.
레인지로버 SV는 SVO(Special Vehicle Operations)의 손길이 더해진 모델이다. 개인 맞춤형 디자인과 소재, 세부 마감까지 일반 레인지로버와 차별화했다.
외관은 멀리서 보면 절제돼 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고급스럽고 세심한 디테일이 드러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크기다. 차체가 상당히 크지만 첫인상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레인지로버 특유의 낮아지는 루프 라인과 강한 웨이스트 라인,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실 라인이 차체를 길고 안정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측면에서 바라보면 선이 많지 않다. 불필요한 장식을 덧붙이기보다 차체 면을 깔끔하게 정리한 모습이다. 큰 차체인데도 복잡하거나 화려하다는 느낌보다 단정하고 묵직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SV만의 디테일도 눈에 띈다. SV 전용 그릴과 프론트 범퍼, 새틴 크롬으로 마감한 하단 와이드 블레이드가 대표적이다. 멀리서 볼 때는 은은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소재와 마감의 차이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고성능 모델임에도 외관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대한 차체에 스포티한 장식을 잔뜩 넣기보다 필요한 부분에만 포인트를 줬다.
SV 라운델도 세심하게 다듬은 디테일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고급 시계의 페이스에 사용되는 기술을 활용해 세라믹으로 제작한 만큼 일반적인 엠블럼과는 촉감과 표면의 느낌부터 다르다. 차체 곳곳의 세라믹 소재와 정교하게 다듬은 금속 장식 역시 존재감이 드러난다.
실내는 외관보다 레인지로버 SV의 성격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운전석에 앉으면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공간의 여유였다. 대형 SUV답게 시야가 넓고 좌석 주변도 넉넉하지만, 실내를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각 요소를 정돈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세미 아닐린 가죽과 세라믹, 금속, 베니어는 서로 튀지 않도록 배치됐다. 처음에는 담백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소재와 마감의 차이가 드러난다. 특히 세라믹 소재는 손으로 만졌을 때 차갑고 매끄러운 촉감이 인상적이다.
센터페시아에는 13.1인치 커브드 플로팅 글래스 터치스크린이 자리한다. 화면은 크지만 실내를 압도하지 않는다. 직접 조작해 보니 메뉴 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필요한 기능을 비교적 빠르게 찾을 수 있다.
운전석에서는 높은 시야가 확보된다. 차체가 크지만 주변을 넓게 볼 수 있어 실제 주행에서는 크기에 대한 부담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정숙성이다.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부터 엔진음이 크게 들리지 않고,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여도 노면 소음과 타이어 소음이 실내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는다.
단순히 '조용한 차'라는 것과는 다르다. 엔진과 노면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적극적으로 억제하면서 실내의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느낌이다.
편의 사양은 플래그십 SUV다운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기능보다 실제 이동에서 자주 쓰게 되는 장비의 완성도가 인상적이다.
그중 활용도가 높은 사양은 냉장 공간이다. 1열과 2열에 각각 마련돼 음료를 보관하고 꺼내기 편하다. 특히 2열에서는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장거리 이동에서 활용도가 높다.
2열의 전동식 클럽 테이블도 유용하다. 테이블은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올려놓기에 충분하다. 장식용 옵션이라기보다 이동 중 간단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실용적인 공간에 가깝다.
핫스톤 마사지 기능은 25개 프로그램과 강도를 설정할 수 있고 최대 20분 동안 작동한다. 단순히 시트를 진동시키는 방식과 다르다. 등과 허리 주변으로 자극이 전달돼 장시간 주행 중 긴장을 풀기에 적합하다.
1680W 메리디안 시그니처 사운드 시스템도 정숙한 실내와 잘 어울린다. 음악을 크게 틀지 않아도 실내 전체를 채우는 듯한 풍부한 소리가 느껴진다.
바디 앤 소울 시트와 센서리 플로어는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센서리 플로어는 음악을 귀로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발밑으로 진동을 전달한다. 실제로 음악을 재생해보면 소리가 몸 전체로 퍼지는 듯한 느낌이 독특하다.
실내 공기 질 관리도 세심하다. 공기 정화 프로 시스템은 PM 2.5 필터 등을 통해 미세먼지와 꽃가루 같은 입자를 줄여준다. 장시간 차량에 머무는 상황에서 체감도가 높은 기능이다.
특히 2열 편의 사양은 센터 콘솔에 마련된 8인치 통합형 터치스크린 하나로 손쉽게 조작할 수 있다. 가죽과 베니어로 마감된 고정식 센터 콘솔에 화면이 자리해 시트 각도와 마사지, 냉장고, 실내 환경 등 다양한 기능을 직관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여러 버튼을 찾아 조작할 필요 없이 화면을 몇 번 터치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설정을 바꿀 수 있어 편리하다.
4인승 모델의 2열은 일반적인 SUV 2열과 비교하기 어렵다. 독립형 좌석 두 개가 놓이고 가운데에는 고정식 센터 콘솔이 자리한다.
좌석에 몸을 기대면 등과 허벅지를 안정적으로 받쳐준다. 다리 받침대와 발 받침대를 펼치면 자세가 자연스럽게 편안해진다. 2열에 앉으면 왜 레인지로버가 뒷좌석 공간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다.
저속에서 도심의 요철을 지날 때도 차체가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고속도로에 올라가 속도를 높여도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이 크지 않다. "저속에서나 고속에서도 안정적이다" 이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2열 승객 입장에서는 차가 얼마나 빠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편안하게 이동하느냐가 중요하다. 레인지로버 SV는 이 부분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
2열의 냉장 공간과 테이블도 이런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한다. 테이블을 펼치고 음료를 꺼내서 마신 뒤 시트를 뒤로 눕혔다. 이동 중 잠시 업무를 보다가 그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차 안에 넣었다는 표현이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4인승 모델이라고 해서 트렁크 공간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특유의 넓은 적재 공간은 골프백이나 여행용 대형 캐리어 등 부피가 큰 짐을 싣기에 적합하다.
특히 테일게이트를 열었을 때 단순히 짐을 싣고 내리는 공간 이상의 활용성이 눈에 들어온다.
테일게이트 이벤트 스위트 옵션을 적용하면 하부 테일게이트와 적재 공간을 야외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하부 테일게이트에 마련된 공간에 앉아 잠시 쉬거나 야외에서 음악을 듣는 것도 가능하다.
파워트레인은 SV 전용 4.4리터 터보 V8 MHEV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돼 최고출력 615마력, 최대토크 76.5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 시간은 4.6초다.
수치만 보면 상당히 공격적인 SUV다. 하지만 실제 주행에서는 의외로 차분하다.
가속페달을 부드럽게 밟으면 차체가 조용하게 앞으로 나간다. 더 깊게 밟으면 V8 엔진의 힘이 즉각적으로 전달되면서 속도가 빠르게 올라간다. 그런데 운전자가 느끼는 부담은 크지 않다.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과 올 휠 스티어링, 다이내믹 리스폰스 프로, 인텔리전트 드라이브라인 다이내믹스 등이 차체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잡아준다.
특히 고속에서 안정감이 인상적이다. 대형 SUV는 속도가 올라가면 큰 차체로 인해 움직임이 둔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SV는 고속으로 갈수록 차체가 노면에 차분하게 붙어 있는 느낌을 준다.
차선 변경을 할 때도 차체가 한 번 크게 출렁인 뒤 따라오는 느낌이 아니다. 운전자가 예상한 방향으로 차가 비교적 정확하게 움직인다.
저속에서도 안정적이다. 주차장이나 좁은 도로에서는 큰 차체가 부담스럽지만 올 휠 스티어링 덕분에 생각보다 움직임이 수월하다. 큰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큰 차를 억지로 움직인다는 느낌은 적다.
고속도로에서는 반대로 차체 크기가 장점으로 바뀐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묵직한 차체와 서스펜션의 안정감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최신운전자보조시스템(ADAS)도 눈에 띈다. 이를 활용하면 알아서 차선 안에서 설정한 속도로 일정하고 정확하게 차량 위치를 유지해 특히 장거리 여행 시 확실히 피로가 줄어들고 여유 있는 주행이 가능하다.
시승하면서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안정감이다. 강력한 엔진을 갖췄지만 운전자에게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는 힘 있게 가속하면서도 평소에는 조용하고 편안하게 움직인다.
특히 4인승 모델은 SV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독립형 2열 좌석과 냉장 공간, 전동식 테이블, 마사지 기능까지 갖춰 뒷좌석을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만든다.
외관은 절제돼 있고 실내는 고급스럽다. 주행은 강력하지만 거칠지 않다. 무엇보다 빠르게 달리는 순간에도 실내의 평온함이 크게 깨지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레인지로버 SV는 고성능 SUV이면서 동시에 움직이는 라운지다. 이 차의 진짜 매력은 운전석보다 2열에서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레인지로버 SV의 부가세 포함한 판매 가격은 3억6267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