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지프 랭글러 루비콘, SUV 시장의 극단적 보수주의자

    입력 : 2017.01.13 17:11 | 수정 : 2017.01.17 09:43

    지프 랭글러와 로터스 엘리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모델 모두 양 극단에 서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랭글러는 이 부분에 있어 가장 극단적이고 원초적인 주행감각을 선사하는 오프로더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바야흐로 SUV의 시대다. 자동차 시장에서 SUV가 갖는 비중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특정 차종만을 만들어오던 럭셔리 브랜드들도 SUV 개발에 가세할 정도로 이 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런 흐름에 지프 랭글러는 단연 주목되는 차다. 쿠페, 럭셔리, 콤팩트, 도심형 등의 미사여구로 그럴싸하게 포장돼 출시되는 요 근래의 SUV와는 달리, 오리지널과 정통을 고수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지프의 아이콘 랭글러 루비콘을 시승했다. 시승한 모델은 3.6리터 V6 가솔린 엔진과 5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모델로, 최고출력 284마력과 35.4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외형은 수수하지만 다분히 ‘지프’스러운 디자인을 담아내고 있다. 차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정통 SUV라는게 느껴지는 스타일이다. 차량의 돌출된 부분들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덮여 있어 수리 및 스크래치로부터 조금 더 자유롭다.

    각진 휠 아치와 반듯하게 자른 두부처럼 툭 떨어지는 루프 라인, 걸터앉을 수 있을 정도로 앞이 툭 튀어나온 범퍼는 요즘의 디자인 감각과는 거리가 멀다. 약 75년전,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 전장을 누비던 윌리스 지프의 외형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된다.

    도어 외부로 노출되어있는 힌지, 플라스틱 재질로 구성된 루프 탑 등으로 짐작하건대, 랭글러는 이 모든 부분을 탈부착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도어와 루프를 모두 탈거하면 랭글러의 가려진 알몸이 드러난다. 있는 그대로의 날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당장에라도 올라타서 거친 노면을 질주하고 싶어지는 본능을 자극한다.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감성품질이라는 부분을 중요 시 하며, 문 닫히는 소리와 버튼의 눌리는 압력까지도 신경을 쓰는 추세지만, 랭글러는 감성적인 부분보다 기능적 측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다.

    힘껏 닫지 않는다면 잘 닫히지 않는 도어의 무게감은 물론, 큰 소리를 내며 해제되는 도어락, 90년대 자동차에서나 들어봤던 것 같은 방향지시등 소리가 모두 해당된다.

    인테리어 구성 역시 그 흔한 인조가죽은 찾아볼 수 없다. 스티어링을 감싼 가죽 외에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감성적인 부분보다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부분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 차량의 특성상 이내 수긍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6.5인치 터치 디스플레이, 후방카메라, 블루투스 핸즈프리, 크루즈컨트롤 등의 편의장비는 갖추고 있다. 대신 블루투스 핸즈프리엔 미디어 스트리밍 기능은 지원하지 않는다.

    일반 도로에서의 주행 감각은 기자가 군생활 시절 강원도 일대 산악을 함께 누볐던 소형 전술차량과 별반 다를 것은 없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시끄럽다거나, 흔들린다거나, 출력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두꺼운 오프로드 전용 타이어의 소음과 각진 외형 탓에 풍절음은 큰 편이다. 고속화도로를 90~100km/h내외로 주행할 경우 도심 주행 때 보다는 동승자와 대화할 때 목소리 톤을 더 높여야 했다.

    그러나 평범한 SUV 차량들도 약간은 버거울 수 있는 오프로드 상황에 직면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마침내 성도에 입성하고 한중왕의 제위에 오른 유비의 심정이 이랬을까, 포장된 아스팔트 길의 끝단에 섰을 때의 긴장감은 말로 형용할 수는 없었다.

    처음 주행에선 특별한 조작 없이 2륜 모드로 주행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움직임은 거침이 없다. 출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구간에서만 수동으로 기어 단수를 낮춰주면 거침없이 움직인다.

    일반 도로에서의 출렁임마저 이런 길에선 안락함을 선사하는 존재로 변해버리고, 시끄럽기만 하던 오프로드용 타이어의 접지는 든든하기만 하다.

    낙엽이 많이 쌓인 구간을 지날 때 쯤 2륜 모드의 한계가 여실없이 드러나지만, 침착하게 중간변속기를 4H(사륜 고속)모드로 변경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조심스럽게 움직일 필요도 없이 거침없이 나아가는 움직임이 제법 짜릿하다.

    진흙이나 모래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4L(사륜 저속)모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2륜 모드로 주행할 때와 달리 나머지 두 바퀴에 힘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 느껴진다.

    이 밖에도 구동력을 제한하는 액슬 록, 전륜 스웨이 바 분리 기능 등이 탑재되어 있다. 액슬 록은 구동축을 잠궈 여러 바퀴가 미끄러지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마련된 시스템이다. 3개의 바퀴가 진흙 속에 빠져 구동력을 잃었어도, 한 개의 바퀴가 온전한 구동력을 발휘해 탈출을 돕는다.

    전륜 스웨이 바 분리 기능은 이보다 더 극단적인 상황을 위한 장비로, 요즘 SUV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시스템이다. 바위 같은 급격한 구간을 오를 때 특정 바퀴가 뜨는 상황을 대비, 서스펜션의 댐핑 스트로크를 기존 대비 25% 증대시켜 접지력을 향상시킨다.

    데일리카로 운용하기엔 조금은 불편하다. 출퇴근과 고속도로 주행 등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범위 내의 도로’에서 주행할 목적으로 랭글러를 구입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5000만원에 더 편안하고 안락한 SUV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일의 불편함은 감내하고 주말엔 길을 만들어가며 거친 오프로드를 달려나갈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면 이 차는 단연코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유일무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많은 자동차 매니아가 퓨어 스포츠를 추구하는 로터스에 환호하듯, 랭글러는 순수 오프로더의 결정체로써 어떤 길도 갈 수 있는 아주 원초적인 정통 SUV 그 자체의 존재다. 어쩌면 로터스가 가지 못하는 길을 갈 수 있다는 부분에서 더 낫다고 볼 수 도 있겠다.

    유럽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빚어내는 럭셔리, 스포츠 SUV들보다 매혹적이고 섹시한 차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자동차가 가지 못하는 길을 찾아가는 자연인들이 아니더라도, 랭글러는 반박의 여지도 없는 최고의 차 중 한 대인 게 틀림없다.

    • Copyrights ⓒ 데일리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