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시승기] 엔진과 전기모터의 밀월..포르쉐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

데일리카 인제=박홍준 기자

입력 : 2018.08.30 09:56

수정 : 2018.08.30 09:56

[인제=데일리카 박홍준 기자] 5년차 예비군 훈련이 막 끝난 밤, 포르쉐에서 문자가 왔다. 호우경보로 시승행사가 축소 운영된다는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찾은 인제 스피디움의 날씨는 을씨년스러웠다. 최근 한반도를 ‘스쳐’간 태풍은 일개 보슬비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시승 차량은 포르쉐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 브랜드의 기함이지만, 그래도 포르쉐다. 엄연히 파나메라 터보 다음으로 빠른 모델이기에, 걱정이 앞서는 건 사실이었다.

■ 911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디자인

모든 포르쉐의 디자인은 반드시 911 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많은 포르쉐들이 911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디자인 기조를 이어왔다.

1세대 파나메라는 이와는 다소 괴리감이 있었지만, 2세대의 디자인은 보다 911과 흡사해졌다. 특유의 플라이 라인이 더 세밀해진 점이 제일 크게 느껴진다.

차체의 모든 면은 찍어낸 게 아닌, 빚어진 듯 한 매끈하고 유려한 형상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볼륨감과 굴곡을 지녔음에도 다이내믹하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이는 측면부에서 도드라진다. 길어진 보닛과 리어 오버행은 후륜구동차의 전형적인 비례감을 보여주면서도, 미드십 엔진이 자리 잡았을 것 같은, 포르쉐 특유의 ‘그 모습’이다.

디자인의 화룡점정을 찍는 곳은 단연 후면부다. ‘빵빵하다’는 저급한 단어 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는 풍부한 볼륨감, 보다 과감하게 누운 모습의 루프 라인,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입체감 있는 테일램프가 그렇다.

하이브리드 차량인 만큼, 친환경적이라는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브레이크 캘리퍼, 레터링의 윤곽선은 모두 연녹색이다. 같은 톤으로 ‘광기’를 담아내는 여타의 고성능차와는 차이다. 특히, 흰색 차체와 연둣빛 포인트는 이 차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조합으로 비춰진다.

■ 컴퓨터를 연상케 하는 구성

시트는 스포츠 주행을 염두한 두툼한 버킷이 자리 잡았음에도 안락하다. 쇼퍼드리븐의 목적일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국산 준중형차 수준의 레그룸과 그보다도 비좁은 헤드룸은 아쉽긴 하지만.

2열 중앙을 가로지르는 디스플레이는 별도의 온도 조절과 인포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도록 독립된 형태를 취한다. ‘굳이 필요할까’ 싶지만, 메모리 시트 까지 갖췄다. 핸들과 페달만 없을 뿐, 어지간한 운전석 수준의 구성이다.

마이클 키르쉬 포르쉐코리아 사장은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를 ‘가장 진보한 파나메라’라고 자평했다.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격하게 공감했다.

하나의 원, 두 개의 반원으로 구성된 클러스터와 특유의 스티어링 휠은 포르쉐 고유의 것이지만, 12.3인치 디스플레이와 고광택 소재로 처리된 버튼류들은 그 자체만으로 전자기기 같은 인상을 준다.

버튼을 잘못 누르면 차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그런 공포감을 준다고나 할까. 버튼과 다이얼이 좋은 아날로그 세대라면 다소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그런 부담스러운 느낌이다.

기어노브 주변에 포진한 조작 장치들은 사실 터치센서를 가장한 버튼이다. 직관성을 걱정하며 손가락에 힘을 줘 보니, 약간의 저항이 걸리며 ‘딸깍’ 하는 소리가 난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터치스크린의 직관성과 반응 속도는 근래 경험한 수입차 중 최고다. 손가락이 디스플레이에 가까워지면 가장 가까운 메뉴가 팝업 형태로 툭 튀어나온다. 처리 속도 또한 근래의 스마트폰 못지않게 빠르다.

다수의 전동화 차량들이 그렇듯, 디스플레이는 다양한 정보를 표시한다. 동력 전달 상황과 배터리의 충전 상태 및 예상 주행가능거리, 하이브리드 모드에서의 추가적인 설정 등이다.

엔진을 구동시켜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E-차지와 유사한 기능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 흔히 탑재된 기능이지만, 배터리의 사용량을 운전자의 의사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E-홀드 기능은 좋은 아이디어다. 시내 주행을 위해서 배터리를 아끼건, 고속 주행 시의 부스트를 위해 전력을 아껴두건, 전기를 원할 때, 선택적으로 쓰라는 뜻이다.

물론, 서스펜션 감쇠력과 배기 시스템 설정, 동력 배분 상황, 스포일러의 작동 유무 등 고성능차 고유의 기능들도 디스플레이에 꼼꼼하게 표시된다. 애플 카플레이 등 커넥티비티 서비스는 이제 당연하게 까지 느껴진다.

■ 고급세단과 스포츠카의 완벽한 양립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의 파워트레인은 2.9리터 6기통 엔진과 전기모터, 8단 PDK 변속기, 사륜구동 시스템이 조합된다.

엔진의 최고 출력은 330마력, 전기 모터의 출력은 136마력 수준이며, 이 두 개의 심장의 단일화되면 462마력, 71.4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제원 상으론 파나메라 4S 보다 22마력 높고, 토크는 파나메라 터보 보다 7.1kg.m가 적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도달하는 데엔 4.6초, 최고시속은 278km에서 ‘제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모터만으로 최대 33km를 주행할 수 있고, 복합연비는 리터당 12.3km다. 450마력이 넘는 포르쉐의 연비가 두 자릿수라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자료를 다 읽어보고 차에 앉으니, 분주히 움직이는 와이퍼와 참방거릴 정도로 물이 흐르는 노면 상태에 정신이 번쩍 든다. 사륜구동이라지만, 이런 고출력차를 마음껏 다루거나 한계점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의구심을 품고 도로에 접어들어도 엔진은 깨어날 줄 모른다. 배터리의 용량과 출력이 넉넉한 탓이다. 정숙하고 안락한 승차감이지만, 빗소리만이 들리는 정적은 되려 긴장감을 높였다.

가속 페달을 얼마나 더 밟았을까. 천둥이 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고속 주행 구간에 진입하니 엔진이 깨어났다. 6기통 엔진 같지 않은, 아니 하이브리드에선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소리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스포츠 플러스로 변경하며 서서히 텐션을 올려가기로 했다. 평소 보다는 낮은 속도의 주행이었지만, 스티어링과 액셀러레이터, 서스펜션, 배기 사운드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물기가 덜한 직선주로, 차는 없었고, 스포츠 플러스 상태에서 가속 페달에 체중을 실었다. 내연기관을 억압하던 전기모터가 일순간 돌변했다. 엔진과 공모해 기자의 머리를 뒤로 밀어낸다.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찰나, 크로노 패키지 다이얼 중간에 위치한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을 눌렀다. 계기판 한 구석에서 20초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초등학생 시절 오락실에서 즐겼던 ‘킹 오브 파이터’에 비유한다면, ‘기 터뜨린’ 상황이다. 그렇다. 여기서 기술 쓰면, ‘초필살기’ 나온다는 뜻이다.

이쯤 되니, 머리를 뒤로 밀어내는 게 아니라,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는 수준이다. 테슬라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가용할 수 있는 최적의 성능을 이끌어 낸다는 건 확실하다.

굽이진 강원도의 산길을 돌아나가는 실력은 수준급이다. ‘너무 빠르게 진입한 것 같은데’ 싶은 찰나, 이미 동력 배분과 조향 각이 더해졌는지, 여유롭고 안정적인 모습이다. 흐트러지지 않은 채,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굳이 체급이 분류된다면, 대형 세단에 속하지만, 실제 차량을 조향하면, 차가 그리 크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그만큼 안정적이고 자신 있게 고갯길 주행에 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 포르쉐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의 시장 경쟁력은...

파나메라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1억5720만원. 물론 옵션을 추가적으로 더한다면 의미 있는 가격은 아니지만, 같은 엔진을 쓰는 파나메라 4S보다 2000만원 정도 싸다.

파나메라 4S를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가속 성능과 최고속도가 뒤떨어질지언정, 제원상 엔진 출력은 더 앞서고, 연비도 더 좋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플래그십 세단을 직접 운전하는 ‘오너 드라이버’라면 파나메라 하이브리드의 가치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를 뛰어넘는다. 가격은 S400d 4MATIC L 보다 1000만원 정도 저렴한데, 복합연비는 아랫급의 E220d 4MATIC과 1km 정도의 차이만을 보인다.

자, 그럼 ‘느낌’ 만으로 보자. 백발이 희끗한 중⋅장년층이 S클래스를 타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줄 것이다. 그리고 S클래스의 자리를 포르쉐 파나메라로 대입해보자. 기자라면 후자 처럼 늙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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