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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무단횡단, 과속버스… 공포의 중앙차선 정류장

부산=박주영 기자

입력 : 2018.04.03 03:01

3월 30일 밤 11시 10분쯤 부산 해운대구 중앙버스전용차로(BRT)에서 정류장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A(70)씨가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지난 2월에도 같은 구간에서 1차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B(84)씨를 치었다. 올해 1월 말에 동래구 내성 교차로~해운대 운촌삼거리 간 8.7㎞ 구간을 개통하고 두 달여 만에 사망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것이다.

◇무단횡단, 버스 과속… 치사율 높아

전국에서 중앙버스전용차로가 늘면서 보행자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서울은 대중교통 활성화와 교통 혼잡 완화를 위해 중앙버스전용차로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시내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685명 중 14%(98명)가 중앙버스전용차로 인근에서 숨졌다.


 

지난해 말 개통한 서울 종로 중앙버스전용차로 위로 버스들이 달리고 있다. 중앙버스전용차로는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도로 한가운데 있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가 늘면서 사고 위험도 커졌다. /박상훈 기자
지난해 말 개통한 서울 종로 중앙버스전용차로 위로 버스들이 달리고 있다. 중앙버스전용차로는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도로 한가운데 있는 버스 정류장 쪽으로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가 늘면서 사고 위험도 커졌다. /박상훈 기자

중앙버스전용차로 사고가 잦은 것은 무단 횡단의 유혹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3년간 서울시 사망자 98명 중 93명은 무단 횡단 사고였다. BRT 구간의 버스정류소는 도로 한가운데 있다. 건널목 거리가 2~3차로로 짧아 빨간불에도 무단 횡단을 감행하는 보행자가 많다. 서울시 교통안전과 관계자는 "왕복 8차로일 때는 엄두를 못 내던 보행자도 정류장이 중앙에 생기면서 거리를 만만하게 보고 쉽게 무단 횡단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BRT를 오가는 버스나 승용차 운전자의 과속(過速)도 치사율(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을 높인다. BRT는 일반 차로보다 교통량이 적다 보니 속력을 높이기 쉽다. 시내 도로에서는 버스·승용차 모두 시속 60㎞로 속도 제한이 있지만, 야간에는 무용지물이다. 실제 BRT 보행자 사망 사고는 주로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발생했다. 오전 4~6시에 가장 많았다.


BRT 구간 교통사고는 일반 도로보다 피해가 더 크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를 뜻하는 치사율이 BRT 구간에선 3.1명에 달했다. 일반 도로의 2배 수준이다.


 

경찰도 BRT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 지난해 서울지방경찰청은 중앙버스전용차로 22곳을 중심으로 야간 과속 운전 집중 단속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심야 시간대에는 버스들이 과속하면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면서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장 인근에서는 보행자가 무단 횡단할 위험이 있으므로 운전자가 최대한 서행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무단 횡단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 사고를 줄인다. 무단 횡단을 하다 걸리면 캐나다에서는 700달러(약 74만원) 이하, 미국은 1000달러(약 105만원) 이하의 벌금을 낸다. 우리나라의 무단 횡단 범칙금은 2만~3만원이다.

◇보행자 중심 신호 체계 도입해야

서울시는 2004년 이후 12개 도로축에 123.3㎞의 중앙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해왔다. 올해 상반기 중 천호대로·동작대로·한남대로에 총 6.8㎞ 더 확대할 계획이다. 부산도 앞으로 5개 구간 38㎞에 BRT를 도입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찰과 협의해 앞으로 정류소 부근에 무단 횡단 방지대나 중앙분리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보행자 중심으로 도로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최근 미국에서는 건널목을 건너는 보행자에게 먼저 신호를 주고 이후에 차량에 진행 신호를 주는 방식을 도입했다"면서 "보행자가 건널 때 우회전하는 차량도 멈춰 서고, 보행자도 신호 위반을 하지 않는 등 전반적인 시민 의식 향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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