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음주운전 사고 내도 도망가면 어쩔수 없나

박국희 기자

입력 : 2018.03.16 01:13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아온 개그맨 이창명(49·사진)씨가 음주 운전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15일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이씨가 술을 마시고 운전했다는 합리적 의심은 들지만, 증명되지 않는다"며 뺑소니 혐의에 대해서만 벌금 500만원을 부과했다. 1·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다. 이 판결을 두고 "음주 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에 어긋난다"는 반응이 나온다. "음주 운전 사고를 내면, 무조건 달아나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음주 운전 단속을 해야 하는 경찰은 난감해하고 있다.

이씨는 2016년 4월 밤 11시 20분쯤 지인들과 저녁 식사 후 차를 운전해 서울 영등포구 교차로를 지나다 인도 위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사고 신고를 하지 않고 자신의 포르셰 차량을 내버려둔 채, 100여m 떨어진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이씨는 이튿날 오후 8시 25분 영등포 경찰서에 출석했다. 사고 후 21시간 만이었다. 경찰이 음주 측정을 했으나, 혈중알코올농도가 0%였다.

검찰과 경찰은 사고 전 이씨와 함께 술을 마셨다는 동석자 증언 등을 토대로 이씨를 음주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씨가 음주 운전을 했다고 볼 정황은 여러 가지였다. 경찰은 이씨가 운전대를 잡기 전, 일행 6명과 모인 자리에 41도 소주 6병, 생맥주 9잔이 반입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사고 직후 응급실에서 이씨는 "소주 2병을 마셨다"고 스스로 말했다. 의료진은 "이씨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고 했고, 일행도 "이씨가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저녁 자리에서) 6명이 균등하게 술을 나눠 마셨다"고 가정한 뒤 운전 당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 정지 수준인 0.05% 이상이었다고 봤다.

하지만 1·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이씨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면서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검찰이 범죄 사실을 증명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6명이 동일하게 술을 마셨다고 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 증거만으로는 이씨가 마신 술의 양을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수사기관은 이씨 사례를 악용한 '모방 범죄'가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 일부 네티즌은 벌써부터 "음주 사고를 내도 술이 깰 때까지 잠적해 있으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것이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 음주 단속에 걸리거나 음주 사고를 내더라도 일단 도망가고 보자는 심리가 커질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 사고 후 달아난 운전자에 대해선 경찰이 즉각 차량 소유주를 확인하고 체포 인력을 늘리는 식으로 수사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음주 후 24시간이 지나도 음주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감정 방식을 상반기 중 도입할 예정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음주 측정 방법을 고도화해 뒤늦게 붙잡혀도 발뺌할 틈이 없도록 만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경우도 시간이 너무 경과한 경우라면 측정하기 어렵다.

최근 음주 운전 사고는 처벌이 강화되면서 감소 추세다.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5년 연속 감소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 사고는 1만9769건 발생해 2012년(2만9093건)에 비해 32%나 줄었다. 음주 운전 동승자를 함께 처벌하거나 상습 음주 운전자의 경우 차량을 몰수하는 등 처벌 규정이 강화된 덕이다. 이번 판결은 이런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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