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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리운전 마다 않는..한국지엠 군산공장 근로자의 ‘눈물’

데일리카 군산=박홍준 기자

입력 : 2018.03.09 10:20

수정 : 2018.03.09 10:20

지난 7일 오후 5시 10분, 전라북도 군산시 소룡동 한국지엠 군산공장 정문.

‘국가산업단지’로 명명된 이 일대는 타타대우상용차, 두산인프라코어, OCI 등 중화학공업사들이 밀집해있는 전북의 핵심 공업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달 폐쇄조치가 발표된 이후 찾은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찝찝한 해풍과 비가 내리기 직전의 우중충한 날씨가 더해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팽배했다. 야간 조업 준비와 퇴근으로 북적이는 다른 공장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 “야간조업이요?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실례합니다, 혹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공장 정문을 지키고 있는 보안 담당자가 주변을 배회하던 기자에게 다가와 첫 마디를 건넸다. 그는 소속과 직함을 묻고 명함을 확인한 뒤 자신들의 얼굴이 노출되는 사진은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담당자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상경 투쟁을 위해 서울에 갔거나 일찍 퇴근했다”며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은 이 정도 뿐”이라며 말을 흐렸다.

야간 조업과 특근이 시행되지 않은 건 얼마나 됐느냐는 질문에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그 정도 수준까지 가동되지 않은 건 제법 오래된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올 뉴 크루즈, 올란도를 생산했던 군산공장은 지난 2013년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가 발표된 이후 가동률이 급감했다. 지난 해 군산공장의 가동률은 평균 10~20% 수준으로, 이는 월 4~5회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출고 대기장은 텅 빈 모습이 관찰됐다. 어림잡아 축구장 1.5개 수준의 넓이로 보이는 출고 대기장은 불과 30~40대 수준의 크루즈와 올란도가 주차된 모습이었다.

동문 주변은 ‘차라리 죽여라’,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내용이 적힌 찢어진 플랜카드가 삭막함을 더했다. 퇴근하고 있는 한국지엠의 한 근로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이내 사양한 채 목례를 한 뒤 자신의 스파크를 타고 유유히 공장을 빠져나갔다.

■ 현대중공업에 이어 한국지엠까지..군산 시민들 ‘탄식’

군산의 최대 번화가로 꼽히는 수송동과 나운동 일대는 ‘임대’가 붙은 상가들이 눈길을 끌었다.

정상 영업중임에도 임대 공고를 낸 가게들, 아예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나마 열려있는 가게들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개강을 맞은 군산대학고 앞 만이 대학생들로 가득할 뿐이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찾은 한 국밥집은 20개 정도의 테이블 중 불과 4개 테이블 만이 차 있었다. 군산에서만 2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A(58. 자영업)씨는 외환위기 당시에도 이 정도 까진 아니었다며 격정을 토했다.

그는 “번화가 일대 식당과 술집 앞은 현대중공업, 한국지엠(당시 GM대우) 점퍼를 입은 근로자들로 붐볐던 때가 있었다”며 “요즘은 주변 상인들 사이에서 ‘개시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빈번히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은 현대중공업과 한국지엠이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한국지엠이 군산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항은 막대했다는 게 지역 상인들의 설명이다.

한국지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자 맞은 편 테이블의 중년 남성들이 거들었다.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B(49. 중개업)씨는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가동을 멈춘 이후 조선소 근로자들이 내놓은 아파트도 거래가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와중에 한국지엠 근로자들의 매물까지 나올 걸 생각하면 암담하다”며 소주를 권했다.

군산공장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뒤 편에서 홀로 식사를 하고 있던 한 노인은 “평생 민주당 찍어줬더니 기업들 내쫓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며 역정을 토했다.

■ 대리운전 하는 군산공장 근로자, “이거라도 해야죠”

“이거 G사의 G모델이지요? 저는 처음 몰아보는데..좋은 차 타시네요.”

술을 마신 탓에 부른 대리운전 기사 C 씨가 먼저 말을 건넸다. 시승 차량으로 주행테스트나 연비 측정을 겸해 군산으로 취재를 왔다는 설명에 그는 본인이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는 제법 오래됐다”며 “공장 폐쇄 조치가 발표되기 전에도 낮에는 조업을, 저녁엔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지엠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받고 있다. 희망퇴직자들은 통상임금 2~3년치에 해당하는 위로금, 자녀 학자금, 1000만원 차량 바우처 등 인당 2~3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현재 희망퇴직 접수자는 약 2500여명으로, 이 중 군산공장 근로자는 1000여명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희망퇴직을 신청했냐는 질문에 C 씨는 “가족과 논의도 해보고 고민해봤지만 (희망퇴직 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동료들이 싸워주고 있고, 나아질 거란 일말의 희망은 안고 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한편,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과 임한택 금속노조 한국지엠 지부장 등 노사는 이날 열린 2018년도 4차 임단협 교섭에서 회사 측과 노조 측의 주장 차이가 크게 벌어져 평행선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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