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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들고 버스 못타자… 정류장마다 '컵 무덤'

성유진 기자

입력 : 2018.02.08 03:10

지난달 4일부터 서울 버스에선 커피 등 음료를 들고 타는 승객을 기사가 탑승 거부할 수 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음료를 쏟는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자 일부 시민이 버스에 타기 전 마시던 음료를 정류장에 그대로 버리고 가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 되면 버스 정류소가 '음료컵 쓰레기장'으로 변할 정도다.

◇마시던 음료 컵 버리고 버스로

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버스정류장. 한 시민이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들고 있다 버스에 올랐다. 버스 기사가 "커피는 들고 탈 수 없다"고 하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정류장 의자에 컵을 두고는 버스에 탑승했다. 이날 서울시내 버스 정류장을 돌아봤다. 바닥이나 의자에 버려진 음료수 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쓰레기통이 설치돼 있지 않거나 쓰레기통 크기가 작은 정류장일수록 컵 개수가 많았다. 구청 중에는 주변 상점에서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거나 흡연자들이 모여들어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정류장에 큰 쓰레기통을 설치하지 않은 곳들이 있다.

서울 아현역 인근 버스 정류장 간이 벤치에 음료잔이 늘어서 있다. 버스 기사가 음료수 반입을 거부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이 컵을 버리고 탑승한다. /성유진 기자
서울 아현역 인근 버스 정류장 간이 벤치에 음료잔이 늘어서 있다. 버스 기사가 음료수 반입을 거부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이 컵을 버리고 탑승한다. /성유진 기자
서울 아현역 버스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잠시 걸터앉을 수 있게 만든 간이 벤치에 음료수 컵 10여 개가 줄줄이 놓여 버려져 있었다. 일회용 커피컵부터 플라스틱 음료병까지 다양했다. 한 시민은 "음료컵을 들고 타려다 기사에게 제지당해 당황스러웠다. 뜨거운 음료를 바로 마실 수도 없고, 20분 뒤에 오는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도 어려워 벤치에 두고 탔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시내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운행 기준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버스 운전자는 음료 등 음식물이 담긴 테이크아웃 컵의 운송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강제 규정은 아니다. 뜨거운 음료나 얼음이 담긴 컵을 들고 버스에 타는 사람이 늘자 나온 고육책이다. 버스업계에선 하루 3만명 정도가 음료를 들고 버스를 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버스 한 대당 하루 4~5명꼴이다.

조례 개정 후 시내버스에는 이를 알리는 알림문이 붙었다. 20~30분에 한 번씩 안내 방송이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이 조례를 모르는 시민이 많다. 음료수컵을 들고 타려다 제지당하면 정류장에 버리고 승차하는 시민이 많은 이유다.

◇음료 반입 놓고 버스 곳곳 실랑이

강제 규정이 아니어서 기사들의 제지에도 음료수를 들고 타겠다고 고집하는 시민들도 있다. 상암동에서 역삼동까지 버스를 운행하는 김모(53)씨는 "음료컵을 들고 타지 못한다고 해도 '알겠다'며 은근슬쩍 그대로 타는 사람이 많다. 매몰차게 거절하면 민원을 넣기 때문에 강하게 거부하지 못한다"고 했다. 또다른 버스기사(54)는 "규정에 따라 탑승을 제지해도 '왜 안 되느냐'고 되묻거나 불쾌한 낯을 하는 손님이 태반"이라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사들이 탑승을 거부해 불쾌하다거나 왜 이런 조례를 시행하느냐는 민원이 여러 건 들어왔다"고 했다. 실제 이날 본지 기자가 음료컵을 들고 버스에 타보니 버스 10대 중 7대 버스에서 승차를 거부했지만 '거의 다 마셨다' '한 번만 봐달라'고 하니 더 이상 제지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시 버스 기사에게 책임이 전가될까 우려하는 기사도 있었다. 버스기사 백승기(56)씨는 "승객들이 뜨거운 음료를 쏟아놓고는 기사가 과격하게 운전했다며 기사 탓을 한다. 승객에게 세탁비를 물어준 동료도 있다"며 "음료 쏟는 사고가 발생해도 기사가 책임지지 않게 하는 내용을 법으로 강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해외에선 음식물을 들고 대중교통에 타지 못하도록 강하게 제지하기도 한다. 대만은 음식물을 들고 지하철을 타면 벌금 최대 7500대만달러(약 28만원)를 부과한다. 싱가포르 역시 대중교통 내에서 음식물을 섭취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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