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0.19 14:56
현대자동차 노조 창립을 주도한 1세대 노동운동가이자 현대차 2대 노조위원장을 지낸 이상범씨가 현대차 노조에 대해 “우리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퇴출이 기다리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쓴소리를 했다.
그는 회사가 자꾸 해외에 공장을 지으려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면서 “현재와 같은 노사관계로는 현대차의 미래는 물론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도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이 전 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지난 2015년 다녀온 전·현직 노조위원장 해외공장 방문 견학보고서를 올리고 이 같이 밝혔다.
1979년 현대차에 입사한 이씨는 현대차 2대 노조위원장, 울산시의원, 울산 북구청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 당시 그는 윤성근 4대 노조위원장, 이상욱 9대 노조위원장, 이경훈 당시 위원장 등 전·현직 노조위원장 5명과 함께 중국, 러시아, 독일 등의 해외자동차 공장을 견학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국내공장과 해외공장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노조가 경영권 행사에 사사건건 개입하려 하거나 반대하는 것 한 가지였다”며 “경영자 입장에선 '무노조 경영' 한 가지만으로도 신규투자 시에 국내가 아닌 해외공장을 선호할 이유가 충분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신차개발을 해놓고 노조의 동의를 못 받아서 차량을 제때 투입하지 못하는 사례는 경영 측면에선 치명적이다"라며 "인원조정 필요시에 전환배치의 유연성, 한 라인에서의 혼류생산에 대한 거부나 생산관리에 어려움이 없다는 점들도 경영자 입장에서 해외공장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위원장은 해외공장 견학 시사점에서 "현재와 같은 대립적 노사관계로는 회사의 미래는 물론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도 걱정된다"며 "성과를 나누는 것에 대해 노사 간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생산성과 품질원가 면에서는 노조도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완성차 업체의 노사는 소비자의 불만과 협력업체의 원성을 귀담아들어야 한다"며 "2·3차 납품업체 경영진이나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직원 대다수가 완성차 업체에 대해 적개심에 가까운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은 완성차 노사를 '갑'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모적·대립적인 노사관계로 우리(현대차) 스스로 발목을 잡으면서도 고임금, 고복지, 고성과금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동안 내수시장에 대한 독점적 지위와 협력업체에 과중하게 고통을 부담시킨 결과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너그들 망해봐야 정신 차린다'고 서슴없이 말하는데, 이를 악담한다고 괘씸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빨리 정신 차리라는 충고로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이 전 위원장은 "노조 활동가들로부터 원망과 항의 전화를 받고 있다"며 "내가 쓴 글에 대한 전체 맥락을 보지 않고 일부분만 편향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됨으로써 본래의 순수한 뜻이 왜곡되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노사 어느 쪽을 편들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며 "상생과 공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심 끝에 퇴직을 앞두고 전체 구성원 모두에게 남기고자 하는 쓴소리요, 충언이었던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전 위원장은 38년간 몸담았던 현대차에서 올해 말 퇴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