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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전 허용, 사우디 개혁에 불 지피나…'남성 후견인제' 폐지 요구 봇물

입력 : 2017.09.28 10:32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상 최초로 여성의 운전금지령이 해제된 가운데 국제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더욱 뿌리 깊은 악습인 남성 후견인 제도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국제앰네스티는 이날 성명을 발표해 "모든 여성이 남성 보호자를 둬야 하고 자신의 아버지나 형제, 남편 또는 아들이 여성 자신을 대신해 결정권을 갖는 후견인 제도 등 사우디를 휩쓸고 있는 다양한 차별 법안과 관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사우디는 남성 후견인 제도를 두고 결혼생활부터 직업활동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남성에 종속하고 있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나 형제, 결혼 후에는 남편이나 아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여권 취득, 여행 등이 가능해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는 제도다.

법적 후견인인 아버지에게 불복종한 혐의로 올해 초 104일 간 수감생활을 한 30세 여성 메리엄 알오타이비는 텔레그래프에 "이번 움직임은 여성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태도가 변화했다는 낙관적인 사인을 줬다"고 했다. 메리엄은 "그 끝은 남성 후견인제도의 폐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곧 많은 변화를 목도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또 "이러한 변화는 법원이 나를 유죄로 판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기분이 든다"고 덧붙였다.

앞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전날 칙령을 내려 여성의 운전을 허용할 것을 명령했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운전을 금지해 국제적인 비판을 샀던 국가다. 1990년대부터 여성의 운전권을 주장하며 당국의 체포, 구금 등 강압 통치에 맞서 싸운 사우디 여성들이 쾌거를 이룩한 셈이다.

이에 따라 내무부, 재정부, 노동 및 사회개발부를 포괄하는 고위급 위원회가 설립돼 새 교통법규 조항을 만들고 내년 6월부터 칙령은 본격 효과를 발휘한다. 이미 국왕의 선포와 동시에 여성의 운전면허증 신청이 즉시 가능해졌다.

사우디의 이런 움직임은 왕위계승서열 제1순위인 모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개혁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32세의 젊은 피 모하마드 왕세자는 석유에 의존하는 사우디 경제와 보수적인 사회 전반을 개혁하기 위해 비전2030을 추진하고 있다.

여성인권 최하위국 사우디에서 미성년자와 이혼 여성, 여성의 양육권, 여성 법대 졸업생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관련 법을 제정하거나 건국기념일 축제 행사장에 건국 이래 최초로 여성 입장을 허용하는 등 최근 보이고 있는 변화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 움직임이다.

한편 여성의 운전이 가능해지면서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클 전망이다. 사우디에는 외국인을 포함해 20세 이상 여성 1000만명이 살고 있다. 자동차 시장과 보험산업의 불모지다.

또 대부분의 가정이 두고 있는 운전수를 고용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실질 소득이 증가하는 효과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에서 운전수로 일하는 140만명에 이르는 외국인은 한달에 약 500달러의 평균 임금을 받고, 매년 자국으로 88억달러를 유출한다.

아부다비상업은행의 수석 경제학자 모니카 말리크는 "여성이 돈을 벌지 않더라도 가족의 운전수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실질 가용 소득이 높아지는 효과가 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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