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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합차로 돌진·무차별 칼부림… 런던 주말 밤, 지옥으로 변했다

런던=장일현 특파원

입력 : 2017.06.05 03:03

수정 : 2017.06.05 07:39

"차에 치인 사람이 공중으로 6m나 날아갔다."

3일(현지 시각) 오후 밤 영국 런던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런던 브리지와 인근 번화가 일대는 테러범들 공격으로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런던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쯤 테러범들이 모는 하얀색 승합차가 런던 브리지에서 인도(人道) 쪽 행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현장에 있던 BBC방송 홀리 존스 기자는 "다리 북단에서 남단 쪽으로 흰색 차가 시속 50마일(약 80㎞) 속도로 달려오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사람들을 덮쳤다"며 "내 눈앞에서 5~6명이 차에 치여 나뒹굴었다"고 했다.

테러범들은 차가 한 레스토랑 난간에 부딪혀 멈추자 이번엔 차에서 내려 사람들을 공격했다. 레스토랑과 바 등이 몰려 있는 버러 마켓(Borough market) 주변 일대를 활보하며 주말을 맞아 외출을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닥치는 대로 흉기를 휘둘렀다. 제라드 바울스(47)씨는 "30대로 보이는 남자 3명이 (차에서) 뛰어내리더니, 한 소녀를 흉기로 10번 이상 찔렀다"면서 "소녀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지만,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한 목격자는 "범인들은 오로지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한 테러범은 '이건 알라를 위한 것'이라고 소리쳤다"고 했다. 목격자들은 테러범이 갖고 있던 흉기의 길이가 25㎝ 정도라고 했다.

영국 경찰은 오후 10시 8분쯤 신고를 받고 사건 현장에 무장 경관을 급파해 8분 뒤 테러범 3명을 모두 사살했다. 범인들은 폭탄 조끼 같은 걸 입고 있었지만 경찰 조사 결과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번 테러와 관련, 모두 1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 총에 맞아 쓰러진 테러 용의자 3일 저녁(현지 시각) 영국 런던브리지와 인근 버러 마켓에서 일어난 차량·흉기 테러 용의자로 추정되는 남성이 경찰의 총에 맞고 바닥에 쓰러져 있다. 경찰은“용의자가 자살 폭탄 조끼로 보이는 것을 입고 있었으나, 조사 결과 가짜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날 테러로 최소 7명이 숨지고, 48명이 부상했다. /AP 연합뉴스
경찰 총에 맞아 쓰러진 테러 용의자 3일 저녁(현지 시각) 영국 런던브리지와 인근 버러 마켓에서 일어난 차량·흉기 테러 용의자로 추정되는 남성이 경찰의 총에 맞고 바닥에 쓰러져 있다. 경찰은“용의자가 자살 폭탄 조끼로 보이는 것을 입고 있었으나, 조사 결과 가짜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날 테러로 최소 7명이 숨지고, 48명이 부상했다. /AP 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총리는 4일 오전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한 뒤, "그동안 이슬람 극단주의에 너무 관대했다"며 "극단주의자들을 미리 식별해 뿌리 뽑는 데 견고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작년 7월 메이가 총리가 된 이후 1년도 안 돼 대형 테러가 3건이나 터지면서 현 정부의 테러 대처 능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는 8일 총선을 앞둔 보수당과 노동당 등은 이날 하루 선거 운동을 중단했다가 5일 재개하기로 했다.

영국 중부 맨체스터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22명이 사망한 지 12일 만에 또다시 충격적인 테러가 발생하면서 경찰과 정보 당국이 불특정 다수 민간인, 즉 소프트 타깃(soft target)에 대한 공격을 원천 차단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미 안보 전문가 피터버겐은 CNN에 "과거 테러 당국은 트럭에 실린 폭탄을 걱정했지만, 이젠 트럭 자체가 무기로 쓰인다"며 "이런 로테크(low-tech) 테러는 예방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프랑스·독일에서 기승을 부렸던 테러가 올 들어 영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데 대해 영국 경찰력 약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야당인 노동당은 "메이 총리가 내무장관이던 2010~15년 예산 삭감을 이유로 경찰 병력을 2만명 줄인 것이 잇따른 테러를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무장 경관은 약 5500명으로, 15년 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 국제 테러조직은 테러 선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IS는 3일 이번 테러가 발생하기 몇 시간 전에 소셜미디어(SNS) 메시지를 통해 "(이슬람 금식 성월인) 라마단 기간에 십자군들의 시민을 죽여라. 차량으로 그들을 밀어버려라. 전면전을 개시하라"고 촉구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한편 2일 독일 뉘른베르크링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록암링 음악 페스티벌'이 테러 공격 정보가 입수되면서 개막 직전 취소됐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3일에는 이탈리아 토리노 산 카를로 광장에서 영국 웨일스 경기장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TV 생중계로 보던 축구팬들이 폭죽 소리를 폭탄 소리로 착각해 한꺼번에 대피하다 1500여명이 부상했다. 이 중 7세 소년을 포함해 7명은 중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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