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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화장을 하다

김승범 기자

입력 : 2017.04.12 19:14

지난해 출고된 한국지엠 경차 '스파크' 색상은 파랑·빨강·노랑 등 유채색 물결로 뒤덮였다. 10대 중 3.5대가 유채색. 유채색 비중(35.0%)이 흰색(32.3%)을 앞지른 건 처음이다. 2014년엔 유채색 비중은 21.9%였다. 지난해 11월 현대자동차 신형 그랜저 출시 행사장의 무대 중앙을 차지한 차량 색상은 전통적인 흰색·검은색이 아닌 짙은 에메랄드빛이 나는 '카키 메탈'색이었다. 현대차 담당자는 "국내 준대형급 차량 출시 행사에서 유채색 차량이 한가운데 배치된 건 이례적인 변화"라고 전했다.

자동차업체들이 흰색·회색·검은색 등 천편일률적인 무채색 차량 색상을 벗어나 화려한 색깔을 입은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스파크 색상은 2014년 8가지였지만 2015년과 지난해 각각 1개씩 추가해 지금은 총 10가지로 늘었고, 신형 그랜저는 직전 모델보다 색상 종류를 2배 이상 늘려 10종으로 구성했다.
◇경차·준중형차가 컬러 마케팅 주도
이런 색깔 마케팅 강화 현상은 주로 경차와 준중형차에서 두드러진다.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차종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난 1월 출시한 기아자동차 신형 '모닝'은 베이지색(32.0%)이 흰색(31.2%)을 제치고 판매 비중 1위에 올랐다. 2015년만 해도 유채색 대 무채색의 비중이 5대5였는데 작년에는 6대4가 됐다. 기아차 '쏘울'은 지난해 '뉴바닐라쉐이크'(28.1%) 색상이 가장 많이 팔렸다. 현대차 준중형 해치백 '벨로스터'의 경우, 지난해 노란색 계열의 '썬플라워' 색상 판매 비중이 20%로 흰색과 함께 공동 1위에 올랐다.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도 상황이 비슷하다. 기아차 소형 하이브리드 SUV '니로'의 경우 파란색(36.0%)이 흰색(37.7%)을 바짝 쫓고 있다. 현대차 '싼타페'는 진한 파란색 계열인 '오션뷰' 색상이 흰색에 이어 둘째로 많이 팔렸다. 싼타페는 5년 전과 비교할 때 유채색 비중이 2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팔린 쌍용자동차 소형 SUV '티볼리 에어'는 차체와 지붕 색상을 각각 다르게 하는 투톤(two-tone) 걸러 조합의 비중이 35%에 달했다. 3명 중 1명 이상이 흰색 차체에 검은색 지붕이나 빨간색 차체에 검은색 지붕 등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는 색상의 조합을 고른 것이다. 르노삼성 소형 SUV 'QM3'도 '오렌지'·'마린블루'·'소닉레드' 등 국내 시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색상을 선보였다. QM3는 매년 '칸느 블루 스페셜 에디션' 등 시즌별 한정 판매 컬러를 내놓고 있다.

◇중형·대형차도 갈수록 화려해져
색상에 보수적인 추세를 반영하는 중·대형차 시장에서도 점차 화려한 색깔이 늘고 있다. BMW 신형 5시리즈가 대표적. 5시리즈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흰색과 검은색 비중이 전체 판매의 67%를 차지했는데 지난 2월 출시된 신형 5시리즈는 파란색 계열 '블루스톤 메탈릭'(27%)이 검은색(25%)을 제치고 흰색(34%)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한국지엠 말리부의 경우 2년 전까지만 해도 유채색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신형 모델이 출시되면서 그 비중이 25%로 10배 뛰었다. 현대차가 지난해 출시한 G80도 '대형 세단=블랙'의 공식을 깨고 8가지의 컬러를 선보였다.

색상이 디자인 못지않게 자동차 이미지를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르면서 회사마다 차량 컬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조직을 두고 특수 안료 개발과 색상 배합 등에 힘을 쏟고 있다. 현대차가 '아반떼'에 적용하고 있는 '파이어리 레드'의 경우 국산차 최초로 도료에 알루미늄 입자를 섞어 반짝거리면서도 강렬한 느낌의 붉은색을 연출했다.

전체 색상별 판매량을 보면 아직까지는 무채색이 많다. 세계적 도료 업체 엑솔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판매된 차량의 33%가 흰색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회색(19%), 검정(16%), 은색(12%) 등 순서였다. 하지만 파란색은 8%로 2013년 4%에 비해 3년 만에 2배로 증가했다. 빨간색도 2015년보다 선호도가 1%포인트 증가해 전체의 7%에 달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객의 취향 변화에 맞춰 자동차에 다양한 색상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트렌드"라며 "우리 자동차 업체들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색상 연구·개발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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