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2.21 00:26
지난달 현대자동차 해치백(뒷좌석과 트렁크가 연결된 형태) 신형 i30가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팔린 양이다. 지난해 9월 출시한 i30 신형은 6년 만에 완전 변경한 모델이지만 10월 판매량이 648대로 반짝 인기를 끈 뒤론 12월 94대, 올 1월은 84대까지 떨어졌다. 반면 유럽에선 다르다. i30는 독일 자동차 전문잡지 아우토빌트와 아우토차이퉁이 최근 공개한 유럽 준중형 해치백 차종 비교 평가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했고, 지난달 해외 판매량은 국내의 80배에 육박한다. i30는 지난 10년간 현대차가 유럽에서 공략 차종으로 내놓은 모델 중 가장 많이 팔렸다. 현대차는 "해치백은 국내에선 인기가 별로 없지만 공간 활용도를 비롯한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럽에선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개발해 해외로 내보냈지만 국내에선 '미운 오리 새끼', 해외에선 '백조'로 자리 잡은 차량들이 있다. 소비자들 취향이 다르거나 국내에선 이미 인기가 시들해 해외로 공략 거점을 돌린 경우, 아예 처음부터 현지 전략형 모델로 개발한 경우가 많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업체가 해외 시장을 무대로 한 '현지화 전략'에서 성과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프라이드는 해외에서 국내 100배 판매
기아자동차 소형차인 프라이드도 비슷한 처지다. 지난해 연간 해외 판매 대수(44만1374대)는 국내 판매량(4158대)의 100배가 넘는다. 프라이드는 국내 소형 세단 수요가 많지 않아 최근 몇 년간 고전을 했다. 지난해 국내 '베스트셀링카' 중 소형차는 30위권 안에 하나도 없다. 그러자 기아차는 소형차를 많이 찾는 유럽과 러시아·중남미 등 신흥국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프라이드는 지난해 19만2211대(통관 기준)를 수출하는 등 기아차 수출 1위 효자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차의 소형차인 엑센트도 국내에서는 판매 부진으로 '단종설'까지 퍼지고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쏠라리스라는 전략 차종으로 변신해 러시아 판매 1위에 올라 있다. 러시아 현지 소비자들의 요구 사항과 현지 기후 상황을 반영, 현지 전략형 모델로 판매하면서 지난해 9만380대가 팔려 현지 기업인 라다의 그란타를 제치고 처음으로 러시아 베스트셀링카에 올랐다.
기아차 쏘울은 2008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박스형' 모양으로 출시돼 눈길을 끌었다. 2009년 한국차 최초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수상을 시작으로 iF 디자인 어워드, IDEA 어워드 등 세계 3대 디자인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너무 튀는 디자인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지난해 한 달 평균 200대도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기아차의 미국 시장 판매 1위 차량으로 이름을 올렸다. 수납 공간이 많은 레저용 차량이라는 점을 앞세워 마케팅 활동을 강화한 결과 미국인들이 많이 찾은 것이다.
왜건형(지붕이 트렁크 끝까지 수평으로 이어져 적재 공간을 크게 늘린 형태) 모델인 현대차 i40의 경우 처음 개발 단계부터 유럽 시장을 겨냥했다. 국내에서는 왜건형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 지난 1월 8대밖에 안 나갔다. 하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에서는 모두 1687대가 판매됐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 모델 하나를 만들어 전 세계에 팔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각국 소비자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인기가 없는 모델이라도 해외에서는 인기를 끌 수 있는 만큼 국내 업체들이 현지화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만 유독 잘 팔리는 수입차
반대로 수입차 중에는 유독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끄는 모델이 있다. 렉서스 하이브리드카 ES300h는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22% 증가한 6112대를 기록, 렉서스 브랜드 전체 판매량의 58%를 차지했다. 하지만 전 세계로 보면 ES300h가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했다. 한국에 나와있는 렉서스 브랜드는 17종. 전 세계 판매 모델 수와 큰 차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ES300h에 대한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던 셈이다. 회사 관계자는 "디젤 게이트 여파로 독일 경유차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상황에서 한국 하이브리드카 시장에서 강세를 보인 일본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볼보자동차 스포츠 세단 S60이 전 세계 볼보자동차 판매량에서 차지한 비중은 6.7%였다. 하지만 한국 시장만 놓고 보면 S60의 비중은 22.7%에 달했다. 회사 관계자는 "볼보자동차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왜건과 SUV 대신 세단을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 성향에 맞춰 공략을 강화한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