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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오르니…'탁' 트인 시야처럼 속도 '뻥' 뚫려

글=윤형준 기자

입력 : 2016.11.14 19:05

가을이 거의 끝나간다. 마지막 단풍놀이를 즐기러 서울에서 한 시간 반 떨어진 강원도 철원으로 향했다. 철원은 동서로 산에 둘러싸인 평야 지역이다. 남과 북을 잇는 통로 역할을 한다. 한국전쟁 당시 철원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건 이 때문이다. 뻥 뚫린 직선 도로부터 주변 산길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아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철원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한탄강과 강 주변으로 늘어선 기암괴석,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불리는 직탕폭포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철원에 지은 노동당사 등 여러 가지 관광 코스는 덤이다.

FCA코리아가 수입하는 지프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레니게이드'(2.0 디젤 자동식 4륜)를 타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차체는 딱 봐도 소형차인데, 지프차로서 갖춰야 할 디자인은 다 가졌다. 요즘 유행하는 유선형 디자인 대신 각진 박스카 형상을 살렸다. 군용차량의 보조 연료통에 새겨진 'X' 문양을 넣은 후미등과 지붕, 컵 홀더 등은 미군 군용차로 사랑받던 지프차 '윌리스MB'를 떠올리게 한다.

운전석에 앉았더니 시야가 탁 트였다. 레니게이드는 정통 SUV를 표방한다. 안락함은 포기하는 대신, 험로 주행에 특화됐다. 전고(全高)가 1695㎜로 동급인 BMW X1보다 150㎜ 높고, 르노삼성 QM3보다는 130㎜ 높으며, 현대차 투싼보다도 50㎜ 높다. 어지간한 오프로드를 달리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일반 도로에서 고속 주행 시 안정성은 덜하다.

시동을 거는 순간 디젤차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정차 상태에서도 소음과 진동이 실내까지 크게 울린다. 동승한 지인은 "너무 시끄럽다"고 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지, 음악을 틀면 제법 소리가 웅장하다. 8.1채널 스피커가 적용돼 소음과 진동을 어느 정도 묻어 준다.

올림픽대로를 지나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구리 방면)로 들어섰다. 퇴계원 IC에서 빠져나온 다음 4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 보면 포천시 일동면 근처가 나온다. 이쯤부터 주변에 차량이 적어졌다. 도로가 뻥 뚫려 있는 김에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차체의 반응 속도는 약간 늦는 느낌이다. 특히 밟으면 툭툭 튀어나가는 독일 차에 익숙한 운전자라면, '이 차는 왜 이렇게 굼뜨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속 40㎞쯤을 넘어서면서부터 힘 있게 치고 나간다. 특히 언덕길에서 가속 성능이 좋았다. 앞서가는 화물차를 추월하는 데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170마력에 최대 토크 35.7㎏·m을 뿜어내는 2.0L 터보 디젤 엔진 덕이다.

이번 여행 첫째 목적지인 철원 고석정(孤石亭)은 한탄강 전경이 잘 보이도록 바위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다. 신라시대 때 진평왕이 세운 것으로 알려졌고, 고려 충숙왕이 노닐던 곳이라는 기록도 남아 있다. 조선 명종 때 의적당(義賊黨)의 두목 임꺽정(林巨正)이 고석정 건너편에 돌벽을 높이 쌓고 칩거하면서 탐관오리들로부터 조공물(朝貢物)을 빼앗아 빈민을 구제했다는 전설도 흐른다. 아래로는 물결이 굽이굽이 흐르고, 기암괴석 위로는 늦단풍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고석정에서 직탕폭포까지는 고작 2㎞ 남짓. 주변 풍경도 볼 겸 천천히 달리는 김에 차 지붕을 열어 봤다. 앞좌석 쪽 지붕이 통째로 열렸다.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개방감이 컸다. 다만 비가 오는 날은 지붕을 열기 어렵다.

직탕폭포는 여느 폭포와는 달리 밑으로 긴 것이 아니고 옆으로 긴 것이 특징이다. 좌우 폭이 최대 80m에 달해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별명을 가졌다. 다만 높이는 고작 3~5m에 불과. 거센 물길이 암반을 넘어 수직으로 쏟아져 내려 장관을 이룬다.

차로 20분 정도를 더 가면 노동당사에 도착한다. 지상 3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1층은 구조가 남아있지만 2층과 3층은 내려앉으면서 허물어져 앙상하게 뼈대만 남았다. 3층 건물 앞뒤로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게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공산 치하에서 반공(反共)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 와서 고문과 학살을 당했다고 한다.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곳에서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노동당사에서 철원 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임도가 보여 짧지만 오프로드 주행을 시험해 봤다. 모래 언덕길이라 급가속을 하면 바퀴가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 법했는데, 의외로 바퀴가 차체를 잡아끌면서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중간에 자갈밭을 지날 때는 바퀴 쪽에 달린 충격완충기(쇼크앱소버)가 노면 충격을 흡수해 줬다. 운전대 오른쪽 아래로 운전자가 직접 지형을 보고 4륜 설정을 바꿀 수 있는 버튼이 있다. 자동, 눈길, 모랫길, 진흙길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버튼을 누를 때마다 각 지형에 어울리는 4륜 설정으로 바뀐다.

오프로드 주행 성능은 지프차답게 탁월했지만, 두드러지는 단점을 하나 꼽자면 내비게이션이었다. 요즘 내비게이션이 3D 영상으로 차선과 안내판까지 도로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는 데 반해, 이 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은 모든 길이 똑같은 크기로 그려져 있어 주(主)도로와 소도로, 고속도로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길을 찾는 능력도 떨어졌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과 비교했을 때 비효율적인 도로로 안내했고, 시간 예측에도 실패했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은 '구석기시대' 수준의 내비게이션이 달렸다고 아쉬워한다.

연비는 동급 다른 차량에 비하면 약간 떨어지지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날 250여 ㎞ 여행을 마치고 기록한 연비는 14.5㎞/L였다. 장거리 주행이었던 만큼 공인 표준 연비(12.3㎞/ℓ)를 뛰어넘었다.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가 설치돼 있어, 한번 기어를 주차 위치(P)에 두면 자동으로 주차 브레이크가 걸린다. 기어를 주행 위치(D)로 옮긴 다음에도 그 아래 버튼을 눌러줘야 본격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적응하면 괜찮지만 처음에는 일반 수동식 주차 브레이크에 익숙해져 있어 약간 불편했다. 가격은 3480만~439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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