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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없고 세금 낮추니…영국 車산업 부활"

입력 : 2016.10.26 19:16

20일 서울 중구 영국 대사관 관저에서 로렌스 데이비스 영국 자동차산업청장이 자료를 들고 영국 자동차 산업의 부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연정 객원기자
20일 서울 중구 영국 대사관 관저에서 로렌스 데이비스 영국 자동차산업청장이 자료를 들고 영국 자동차 산업의 부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연정 객원기자

“영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지난 15년간 대규모 파업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임금은 서유럽 중 가장 낮고, 임금 상승률도 연 10%씩 급등하는 동유럽과 달리 1% 정도 오르고 있습니다. 법인세율은 20%로 유럽 평균인 30%보다 훨씬 낮죠.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자동차 산업에 미칠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여전히 투자 환경이 좋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을 겁니다.”

지난 20일 한국에 온 로렌스 데이비스(Davies·57) 영국 자동차산업청장은 본지와 만나 “한때 극심한 침체기를 맞았던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정부와 산업계, 노동계가 합심하면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영국은 제2의 자동차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영국 자동차산업의 ‘터닝 포인트’(전환점)은 2009년 업계와 학계가 뜻을 모아 ‘자동차위원회(Automotive Council)’를 만들면서다. 이 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2013년 정부 산하에 업계와 정부 관계자들이 반반씩으로 구성된 자동차산업청이 만들어지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영국은 1950년대만 해도 미국 다음의 세계 2위 자동차 생산국이었다. 그러나 기술 경쟁력, 원가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1972년 192만대 생산량을 최고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롤스로이스·로버·재규어·롤스로이스·벤틀리 같은 쟁쟁한 회사들은 1990년대 이후 2005년까지 모두 해외 기업에 팔려나갔다.

영국은 자국의 대표 브랜드들이 모두 팔려나간 상황에서 뒤늦게 전략을 새로 짰다. 자국 브랜드가 없어도 생산 기반을 영국에 구축하면, 투자와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영국은 이를 위해 해외 자동차업체들의 공장을 유치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먼저 세계 최고의 자동차 부품 제조 기지를 만들어야 완성차업체를 유치할 수 있다고 보고, 연구 개발부터 지원하는 데 집중했다. 영국 법인세(20%)는 유럽 평균 법인세(30%)보다 크게 낮은데, 여기에다 연구개발센터를 짓는다고 하면 세금을 추가로 깎아주었다. 특히 전기·하이브리드·초경량 등 친환경 차량 관련 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투자금의 50% 지원까지 해주고 있다. 지원금은 정부와 업계가 반반씩 부담해 조성한 10억파운드(약 1조3850억원) 규모의 펀드에서 나온다.

그 결과 2009년 109만대였던 영국 자동차생산량은 지난해 168만대까지 늘었다. 유럽 자동차 강국 독일(생산량 603만대)과 스페인(273만대), 프랑스(197만대)보다 생산량이 크진 않지만, 지난 6년간 증가율은 32%로 유럽 최고였다. 독일이 같은 기간 15.8% 감소하는 등 유럽 평균 3.4%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유럽 전기차 생산량 중 26%는 영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데이비스 청장은 “2012년 이후에만 자동차 산업에서 150억파운드의 신규 투자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역할도 컸다. 데이비스 청장은 “서유럽에서 가장 임금이 낮지만, 노동자들은 잔업이 없고 유연한 근무조건과 훌륭한 복지시스템에 만족하고 있다”며 “1986년 영국에 공장을 세운 닛산과 1990년대 공장을 세운 혼다는 한 번도 노사 갈등을 겪지 않았다”고 말했다. 데이비스 청장은 “1970년대 영국도 노사 갈등이 심했지만, 당시 영국 최대 자동차회사였던 레이랜드가 망하면서 근로자들도 ‘회사가 없으면 일자리도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1970년대 세계 6위·영국 최대 자동차회사였던 브리티시 레이랜드는 1975년 수조원대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끝이 없는 몰락을 거듭하다 2000년대 초반 끝내 문을 닫았다. 1970년대 브리티시 레이랜드 노조는 17개가 난립하며 서로 권력 다툼을 했고, 주 3일 근무제를 시행했던 ‘귀족 노조’의 전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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