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17 14:41

천국이 열렸다. 제주에 비행기가 도착하면서 선선한 가을 날씨와 함께 BMW 천국이 우리를 기다렸다.
BMW는 해마다 미디어를 대상으로 대규모 시승행사를 개최한다. BMW가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차종이 이때 등장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드림카 ‘M3’부터 미래가 현실이 되어버린 플러그인하이브리드자동차 ‘I8’까지 줄지어 서 있다.
먼저 만난 차는 고성능 쿠페 ‘M3’. BMW의 ‘달리는 즐거움’을 이해하는데 가장 적합한 차다. 이 차로 제주 도로를 달리는데 마력이나 토크 같은 제원은 필요 없다. 뻥 뚫린 도로를 향해 가속페달을 밟으면 된다.
제주도는 시속 40km/h부터 구간별로 다양한 제한속도가 있다. 시원한 직선 도로가 시속 60km/h인가하면 고속도로 같은 길도 80km/h에 묶인 경우가 많다. 결론은 고속 주행은 불법이다. 또, 산간 도로를 개척한 탓인지 울퉁불퉁 오르고 내린다. 울렁거리는 도로는 빨리 달리기에 역시 부적합. 애당초 M3로 고속 주행의 맛을 느끼려는 것은 아니니 일단 길로 나서봤다.

M3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X5m, M4와 7시리즈 M패키지까지 뒤를 따라온다. 그리고 그 차들과 M3 사이에는 강력한 배기음이 공간을 채웠다. 비록 느린 속도지만 마음만은 초고속 주행을 하고 있다.
BMW코리아의 장성택 상무는 “고성능 차는 언제 어느 순간에나 운전자가 원하는 데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그 한 순간을 위해 고성능 차를 타는 것이지 평소에 과속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주의 오름을 오르고 내리는 사이 엉덩이에는 덜덜거리는 충격이 전해졌다. 역시 평범한 차는 아니다. 강력한 배기음과 함께 산간 도로를 올라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렇다고 과속을 하고 난폭운전을 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우리 앞에는 소형 렌터카들이 줄지어 있었다.
제주도는 신비롭다. 벌써 수십 번 이곳에서 운전을 하고 있지만 매번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요즘은 내비게이션의 도움으로 정확히 목적지를 찾아가지만 지도를 들고 다녀야했던 십 수 년 전에는 ‘어쩌다보니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묘미(?)도 있었다. M3와 함께 순전히 달리는 즐거움을 찾으니 또 다른 제주의 맛이 느껴진다.

중간 기착지에서는 차량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7시리즈다. BMW의 플래그십 모델이지만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와 첫 대결에서 아픔을 겪은 차다. 우리나라의 지독한 S클래스 사랑이 나타난 결과다. 하지만 BMW는 7시리즈를 또 다시 갈고 닦았다. M패키지를 추가했고 숏바디 버전을 추가했다. 보다 젊은 고객을 노린 것.
오너드라이버 중심의 차를 만들었고 젊고 달리기 좋아하는 소비자를 찾아 나섰다. 과정은 그랬고 결과는 미지수다. 그래도 꾸준히 판매량은 늘어나고 있다. BMW의 즐거운 드라이빙이 여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7시리즈는 편안한데 잘 달렸다. M3를 탄 직후라 더 그렇게 느꼈겠지만 편안하다. 좌석은 넓고 성능은 여유롭다. 740 이야기다. 트윈 터보 엔진의 힘은 전 구간에서 부족함이 없다. M3가 바짝 튀어나가기 위한 스프린터와 같다면 7시리즈는 퍼포먼스가 너무나도 뛰어난 마라토너와 같다. 멀리 편하게 잘 달리는데 퍼포먼스도 괜찮다. 제주도의 북쪽에서 출발한 시승은 남쪽 중문 관광단지에 이르러서 일단락 했다.
마지막 시승은 중문단지에서 출발하는 i8이 남아있다. 이번 시승행사의 히든카드다. 국내에서 그다지 시승할 기회가 없는 이 차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스포츠카다. 혹은 패션카라고 부르기도 하고 람보르기니, 페라리와 같은 수퍼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수퍼카라는 장르는 없으니 럭셔리 고성능차 정도로 마무리해야겠다.

i8의 제원은 이미 다 알고 있듯 1.5리터 엔진과 전기모터가 힘을 합한다. 앞바퀴는 모터가 굴리고 뒷바퀴는 엔진이 굴린다. 둘의 조화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운전자는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운전자를 속이는데 i8은 엄청난 기술을 갖고 있다. 1.5리터 엔진이 내는 소리는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부럽지 않다. 사운드제네레이터가 엔진의 작동 상황과 맞춰 설정한 소리를 스피커로 내보내다. 차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소리가 난다. 1.5리터 엔진 본연의 소리는 도대체 확인할 수 없다. 실내에서는 그저 고성능 자동차를 타고 엄청나게 달리는 느낌이 이어진다. 반전이 있다. 속도계를 보면 시속 50km/h 남짓이며 앞에는 **렌터카의 경차 모닝이 달리고 있다.

i8은 탑승조차 예사롭지 않다. 마치 욕조처럼 만든 탑승 공간은 허벅지를 쓸어 담지 않으면 접근하기조차 힘들다. 걸윙도어처럼 날개 펼치듯 열리는 문짝은 제주도에 새로운 것을 구경 온 중국 관광객을 놀래키는데 일조했다. 덕분에 빨간 조끼 아주머니의 카메라 세례까지 받는다.

빨간 게 빠르다는 건 만고의 진리? 어김없이 스포트 모드로 변경하면 계기반 색이 변한다. 소리도 더 과감해지고 전기모터의 2단 변속기와 엔진의 변속기가 쉴 사이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운전자와 조수석 중앙에 위치한 배터리는 1400kg대로 절제한 가벼운 차체를 날렵하게 움직인다. 제주도의 산간 와인딩 도로를 좌우로 날렵하게 빠져나간 차는 시내로 접어든다.

제주의 산은 언제나 축축하다. 안개 때문이기도 하고 비가 자주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승하던 날도 마찬가지. 제주의 산길에서 i8로 와인딩에 들어가다 중앙선 가까이 미끄러졌다. 타이어는 비명소리조차 지르지 않았지만 차는 통째로 중앙선을 향해 옆으로 달려가고 있다. 트랙션 컨트롤이 작동하며 제자리를 찾는 순간은 불과 1초 남짓. 잠깐 사이 차를 지나치게 믿었던 스스로에게 반성의 일침을 가했다.

i8은 편안했다. 이렇게 낮고 예사롭지 않게 생긴 차 가운데 가장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했다. 오히려 M3보다 부드럽고 말랑거렸다. 날렵한 럭셔리 스포츠카의 외형에 부드러운 승차감은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일 수 있다.

이 차를 두고 좁은 트렁크 공간이나 연료효율성, 가격, 판매량을 논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에너지 낭비다. 이 차가 지향하는 것은 미래다. BMW의 100년 뒤 미래를 보여주는 첫 번째 차가 i8이다. 작은 엔진, 강한 퍼포먼스, 운전의 재미, 편안한 승차감을 고루 갖춘 BMW의 지향점이다.

더 드라이브 이다일 기자 dail.lee@thedriv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