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칼럼

정몽구 '글로벌화' 완성… 멕시코 버려진 땅, 첨단 車기지로

페스케리아=김덕한 특파원

입력 : 2016.09.08 19:14

수정 : 2016.09.08 19:33

/조선일보DB
/조선일보DB

현대차그룹 정몽구(78) 회장은 기아자동차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된 포르테(한국명 K3) 보닛에 사인을 한 후 몇 번이나 자식 쓰다듬듯 철판을 어루만졌다. 이내 붉어진 눈시울을 숨기려는 듯, 사람들 뒤편으로 물러서며 고개를 돌렸다.

7일(현지 시각) 멕시코 공장 준공식이 열린 멕시코 동북부 누에보레온주(州) 페스케리아시(市). 기아차는 지난 2014년 8월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투입해 이곳에 완성차 공장을 짓겠다는 투자 계약을 체결한 후 속도전을 벌였다. 2개월 뒤인 10월에 바로 착공한 것이다.

기아차는 공장이 들어서기 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을 14개월 만에 중미(中美)에서 손꼽히는 첨단 자동차 생산 기지로 탈바꿈시켰다. 공사 현장을 지켰던 박우열 상무는 “공사 시작 후 우기(雨期)가 끝났는데도 연일 비가 쏟아져 양수기로 물을 퍼내며 철야 작업을 했다”면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기아차 공장의 속도와 첨단 설비에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멕시코 공장은 정 회장이 2000년 현대차 경영을 맡은 후 꿈꿔 온 ‘글로벌화’를 마침내 완성해낸 의미 있는 공장”이라며 “정 회장은 글로벌 자동차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하루속히 글로벌화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집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 도요타, 미국 GM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보호무역 장벽을 뚫기 위해 해외 현지 생산망을 늘려 왔다. 최근 환율 변동이 심해지면서 환율이 유리한 공장의 생산은 늘리고, 불리한 공장의 생산은 줄이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대응도 해 왔다. 현대차그룹도 멕시코 공장 준공으로 이제 해외에 17개 공장, 연간 510만대의 생산 능력을 갖춘다. 국내 생산 능력 연간 338만대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로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7일(현지 시각) 멕시코 누에보레온주(州)에서 열린 기아차 멕시코 공장 준공식에서 정몽구(왼쪽에서 둘째) 현대차그룹 회장과 일데폰소 구아하르도 비야레알(왼쪽) 멕시코 연방 경제부 장관이 K3 승용차에 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7일(현지 시각) 멕시코 누에보레온주(州)에서 열린 기아차 멕시코 공장 준공식에서 정몽구(왼쪽에서 둘째) 현대차그룹 회장과 일데폰소 구아하르도 비야레알(왼쪽) 멕시코 연방 경제부 장관이 K3 승용차에 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정 회장이 북·중미 시장의 전략 기지로 멕시코를 선택한 것은 멕시코 정부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멕시코는 기아차 공장을 유치하려는 미국 남부 주(州)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여의도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500만㎡(협력업체 부지 포함·약 151만평) 부지를 기아차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여기에 더해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차 대수의 10%만큼을 관세(20%) 없이 수입 판매할 수 있는 기존 혜택을 기아차에는 확대 제공하도록 했다. 이 덕분에 기아차는 한국 공장에서 생산한 차를 매년 5만대씩 멕시코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멕시코는 이 같은 지원책을 통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을 유치해, 완성차 브랜드가 하나도 없으면서도 지난해 자동차 생산국 순위에서 중남미 1위, 세계 7위에 오를 수 있었다.

정 회장은 첨단 공장으로 화답했다.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데 집중하는 ‘범용 공장’을 만들지 않고 첨단 생산 설비를 갖춘 최고의 공장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멕시코 공장에는 로봇 300여 대를 투입해 용접을 100% 자동화했고, 설비가 고장 나면 한국의 전문가들이 원격 지원을 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도 구축했다. 부피가 큰 부품을 협력업체에서 의장공장까지 컨베이어 벨트로 직접 연결하는 직공급 시스템도 구축했다. 멕시코 공장의 시간당 생산 대수는 68대로 전 세계 기아차 완성차 공장들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53초에 1대씩 차를 만드는 셈이다.

정 회장은 멕시코 공장의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5일부터 2박 4일 일정의 미국·멕시코 출장을 강행했다. 지난달에도 역시 2박 4일 일정으로 러시아·체코·슬로바키아 공장을 점검한 터여서 한 달 새 유럽, 북·중미 등 3개 대륙 왕복 4만㎞,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강행군을 벌였다.

현대차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정 회장은 이번 출장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 변화이며,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글로벌 생산 체계 구축이 늦었다면 생존이 어려웠던 것처럼 미래의 도전도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PC 버전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