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칼럼

18조 對 100억… 폴크스바겐의 '두 잣대'

신은진 기자

입력 : 2016.06.29 23:32

폴크스바겐이 디젤 차량 배출 가스 조작으로 피해를 본 미국 소비자들에게 배상금 153억3300만달러(약 17조8000억원)를 내놓겠다고 28일 공식 발표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배상금 대책 없이 "100억원 규모의 사회 공헌 기금에 관한 계획이 있다"고 밝혀 반발을 사고 있다.

미국 소비자에겐 18조원… 한국은 100억원

이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 지방법원에서 공개된 합의서에 따르면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2.0L 디젤 차량 소유자들은 조작 건이 불거지기 직전인 지난해 9월 기준 중고차 가격으로 차를 되팔거나 배출 가스 장치 개선을 위해 무료 수리를 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폴크스바겐그룹이 이 차량 소유주 47만5000명 전원에게 배상금을 1인당 5100~1만달러(약 591만~1160만원) 지급한다.

여기에 EPA(미국환경보호청)와 캘리포니아주에 앞으로 10년간 친환경 자동차 관련 활동 명목으로 20억달러(약 2조3200억원)를 지원한다. 또 3년에 걸쳐 디젤 배출 가스를 줄이기 위한 인프라 기금이나 노후 버스를 교체하는 기금으로 27억달러(약 3조1000억원)를 낸다. 이번 전체 배상 규모는 2014년 도요타가 미국에서 급발진 사고 수사를 종결하며 합의한 12억달러의 10배가 넘는, 자동차 업계 사상 최대 배상액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미국 법무부가 요구하는 민사 벌금(civil penalty)과 형사 벌금도 남아 있어 폴크스바겐이 물어야 할 전체 금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폴크스바겐은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선 미국과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상 계획이 없음을 거듭 확인했다. 폴크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금전적 배상을 하려면 위법 사실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문제가 된 차량은 임의 설정 (배출 가스 조작 장치 설치) 금지 법규가 생기기 이전에 한국 정부 인증을 받아 팔린 것으로 법률상 문제가 없다"면서 "다만 도의적 책임을 느껴 100억원 규모의 사회 공헌 기금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수수방관… 소비자들 직접 소송 나서

국내 폴크스바겐 차량 소유자들은 "폴크스바겐의 행태는 '자동차를 제작·수입하는 사람은 자동차를 배출 가스 기준에 맞도록 제작해야 한다'는 대기환경보전법에 명백하게 저촉되는 위법 행위"라고 주장한다. 국내 소비자들도 미국처럼 자동차 배출 가스 허용 기준을 고의로 맞추지 않은 불법 차량을 구입한 '사기 피해자'라는 점에서 본질이 같다는 주장이다. 문제의 폴크스바겐 차량은 국내에서 12만5000여 대가 팔렸다.

현재 국내 폴크스바겐 구입자 4400여 명은 "속여서 차를 팔았다"는 이유로 폴크스바겐 경영진을 사기죄로 고소하고, 부당 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번 소송을 대리하는 하종선 변호사는 "미국 고객들에 대한 배상안을 한국 고객들에게도 같게 적용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애초 이 소송단은 환경부에 자동차 교체·환불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으나, 환경부는 "교체가 아닌 리콜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면서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번 미국 배상액 발표를 계기로 소송단은 환경부에 자동차 교체·환불 명령 요구 청원서를 다시 내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헌법소원도 낼 계획이다.

이번 논란을 두고 자동차 관련 정부 부처는 말을 아끼고 있다. 리콜 권한을 갖고 있는 국토교통부는 "배출 가스는 환경부 소관이며 연비 논란은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선택하는 문제"라고 했고, 자동차 산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환경부와 국토부에서 알아서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폴크스바겐코리아 리콜 계획서에 대해 "차량을 임의 조작했다는 사항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 차례 거부했지만 그 뒤로 폴크스바겐코리아가 리콜 계획을 계속 내지 않고 있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2년 전 연비를 속인 자동차 회사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경제적 보상 의무를 명시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자동 폐기된 상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처럼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거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았을 때 직접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루빨리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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