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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포르쉐 '911 카레라 4 GTS', 하이브리드의 한계를 깨다
포르쉐가 911의 역사를 새로 썼다. 지난 2025 서울모빌리티쇼에서 국내 최초 공개된 911 카레라 4 GTS는 911 역사상 첫 하이브리드 모델이자, 단순한 효율 중심의 하이브리드가 아닌 퍼포먼스 중심의 하이브리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T-하이브리드'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포르쉐가 르망을 비롯한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다져온 하이브리드 기술을 양산 스포츠카에 이식한 결과물이다. '전기의 개입이 주행의 감성을 지우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기우였다. 오히려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의 긴 직선로에서 만난 이 모델은 하이브리드라는 단어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처음 마주한 911 카레라 4 GTS는 단순히 이전 세대의 진화형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재설계된 스포츠카라는 인상이 강렬했다. 새로운 프런트 범퍼는 수직형 에어 인테이크와 다섯 개의 액티브 쿨링 플랩, 그리고 차체 하부에 숨겨진 어댑티브 프런트 디퓨저를 갖추고 있다. 이 장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실제 주행 상황에 따라 공기 흐름을 능동적으로 제어해 냉각 효율과 에어로다이내믹 성능을 동시에 끌어올린다.전면부는 모든 조명 기능을 통합한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가 기본 장착돼 있다. 불필요한 등화 장치가 사라진 대신 넓어진 통풍구가 자리하며, 그 사이로 라디에이터를 향해 공기가 흐른다. 후면부는 새롭게 디자인된 리어 라이트 스트립이 눈길을 끈다. 한층 날렵해진 그래픽과 'PORSCHE' 로고가 차체 폭을 시각적으로 확장시킨다. 리어 디퓨저는 공기의 흐름을 정밀하게 가다듬는다. 그 아래 자리한 GTS 전용 스포츠 배기 시스템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시동 버튼을 눌러 엔진을 깨우는 순간, 저음의 진동이 차체 전체를 타고 전해진다.
실내는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다. 911 역사상 처음으로 12.6인치 완전 디지털 계기판이 적용됐으며, 클래식 5-튜브 디자인을 디지털로 재현했다. 중앙 타코미터 중심의 레이아웃을 비롯해 최대 7가지 뷰를 지원한다. 포르쉐 드라이버 익스피리언스 콘셉트에 따라 주요 조작부는 스티어링 휠 주변에 집중돼 있고, 시동 버튼은 스티어링 휠 왼쪽에 위치하는 전통도 이어진다.또한, 중앙의 10.9인치 터치 디스플레이를 통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어 편리하다. 무선 충전, 애플 카플레이, QR 로그인 기능,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는 기본이며, 레이스-텍스 소재로 마감된 GT 스포츠 스티어링 휠과 시트는 고급스러우면서도 기능적이다.
911 카레라 4 GTS의 심장은 새롭게 개발된 3.6리터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이다. 배기량은 이전 모델보다 0.6리터 증가했고, 엔진은 더 콤팩트하고 효율적으로 재설계됐다. 벨트 구동식 컴프레서를 제거하고, 대신 고전압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전기식 에어컨 컴프레서를 적용했다. 그 덕분에 엔진 전면의 여유 공간이 생기며, 하이브리드 구성품들을 완벽히 통합할 수 있었다.핵심은 새롭게 개발된 일렉트릭 터보차저다. 컴프레서 휠과 터빈 휠 사이에 장착된 전기모터가 즉시 터보 속도를 높여 부스트 압력을 순간적으로 생성한다. 덕분에 터보 랙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사라졌다. 이 모터는 발전기 역할도 겸해 최대 11kW(15마력)의 전력을 회수해 고전압 배터리에 저장한다. 또한, 웨이스트게이트가 사라진 단일 터보 구조로, 훨씬 민첩하고 응답성 높은 출력을 뿜어낸다.변속기에는 통합형 전기모터가 자리한다. 8단 듀얼클러치 변속기(PDK) 내부에 탑재된 이 모터는 공회전 상태에서도 최대 15.3kg.m의 토크를 더해 엔진을 보조하며, 최대 40kW(약 54마력)의 부스트 파워를 제공한다.결과적으로 이 시스템은 총 최고출력 541마력, 최대토크 62.2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 시간은 3.0초, 최고속도는 시속 312km다. 911 라인업 중에서도 손꼽히는 가속 성능이다.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모든 시스템을 더해도 기존 모델 대비 무게가 단 50kg 증가에 그쳤다는 점이다. 포르쉐가 이 차를 초경량 하이브리드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동 버튼을 눌러 3.6리터 박서 엔진을 깨우자, 하이브리드 시스템임에도 여전히 포르쉐다운 묵직한 음색이 살아 있다. 출발 직후 전기모터가 먼저 차체를 밀어내며 순간적인 반응을 만들어내고, 이어 터보차저가 불을 붙인다. 페달 끝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없는 가속, 그리고 엔진과 모터가 동시에 토크를 분사하는 듯한 폭발감은 전기차도, 기존 내연기관차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코너 탈출 시점에서는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이전 세대 GTS보다 훨씬 빠르게 리어가 반응하며 코너를 박차고 나간다. 즉각적인 토크, 균형 잡힌 무게 배분, 그리고 미세한 스티어링 조작에 반응하는 정확성.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맞물리며,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주는 무게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코너에서 브레이킹 후 재가속 구간에서도 터보차저는 지체 없이 반응하고, 차체는 매끈하게 다음 코너로 이어진다.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와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 결합해 코너링은 믿기 힘들 만큼 예리하다. 마치 미드십에 가까운 밸런스를 갖춘 듯, 차체 중심이 흔들림 없이 돌아나간다.이날 시승 내내 인제스피디움의 고저차와 연속 코너 구간에서 911은 완벽히 노면을 움켜쥐었다. 911 고유의 리어 밸런스를 유지하면서도, 전기모터의 개입으로 초반 응답성은 자연흡기처럼 즉각적이다.
리어 액슬 스티어링도 눈에 띈다. 저속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회전해 회전 반경을 줄이고, 고속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안정성을 극대화한다. 또한,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는 가변 댐퍼 시스템을 통해 노면 상황에 즉각 대응하며, 차체는 기존보다 10mm 낮아졌다.공기역학 역시 대대적으로 손봤다. 프런트 범퍼에는 5개의 액티브 쿨링 에어플랩과, 911 최초로 차체 하부 어댑티브 프런트 디퓨저가 적용됐다. 이 장치는 주행 상황에 따라 플랩을 닫거나 열어 공기 흐름을 능동적으로 제어하며, 냉각 효율과 항력 간의 균형을 유지한다. 리어에는 폭이 넓어진 315/30 ZR 21 타이어와 21인치 휠이 장착돼 트랙션과 구동력을 모두 강화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마다 노즈 다이브가 최소화되며, 고속 제동에서도 자세는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다.인제스피디움에서 만난 911 카레라 4 GTS는 단순히 내연기관의 시대를 이어가기 위한 타협안이 아니다. 이 모델은 하이브리드 기술로 내연기관의 한계를 초월한 스포츠카다. 전기모터의 즉각적인 반응이 엔진의 감성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더 강렬하게 만든다.서킷에서는 폭발적인 성능으로 아스팔트를 집어삼키고, 도심에서는 부드럽고 정제된 주행을 보여준다. 포르쉐가 이 모델을 퍼포먼스 하이브리드라 부르는 이유가 분명했다.부가세 포함한 판매 가격은 911 카레라 4 GTS 쿠페 2억5030만원부터, 911 카레라 4 GTS 카브리올레 2억6660만원부터, 911 타르가 4 GTS 2억6680만원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