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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재규어 F-타입 P300..‘고양이’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데일리카 박홍준 기자] 스포츠카는 늘 머나먼 세상의 존재인 것 같다. 얻는 것 보단 잃는 게 많아서 매우 불합리한 존재이기도 하다.
좌석은 두 개 밖에 없고, 차체가 낮으니 시야도 불편하다. 트렁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금과 보험료, 지출되는 유류비는 어떤가. 스포츠카 오너들은 납세의 의무를 철저히 이행하는 애국자임이 분명하다.
재규어 F타입이 대표적이다. 뒷좌석에 뭔가를 던져둘 2+2 시트 구성도 아니고, V8 엔진이 장착된 ‘SVO'의 연비는 또 어떤가. 위안이라면 2.0리터 4기통 엔진이 장착된 엔트리 모델이 선보여졌다는 점이다.
■ 다 좋다. 근데...
F타입이 매력적인 디자인이라는 데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우락부락한 근육질로 멋을 부린 것도 아니고, 유려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디자인도 아니다. 깨끗하고 심플한데, 스포츠카 그 자체의 모습이다.
재규어의 전설적인 스포츠카 E타입에서 영감을 얻은 외형 때문일까. 별다른 기교 없이 클래식카를 연상시키는 깔끔한 면이 인상적이다. ‘더하는 것 보다 덜어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안 칼럼의 말이 생각난 순간이다.
그럼에도 길게 뻗은 보닛과 짧은 리어는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그것’을 연상케 한다. 후면부는 잔뜩 추켜세워진 봉긋한 형상일 것 같은데, 캐릭터 라인은 포물선을 그려나가며 지면을 향한다. 이 차에서 가장 유니크하게 느껴진 부분이다.
그런데, 18인치 휠이 아쉽다. 시선이 아래를 향할수록 이 감정은 더 강해진다. 굳이 엔트리 모델이라는 점을 드러낼 이유는 없을텐데, 연식 변경이 계획되어 있다면, 조금 더 큰 휠을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인테리어는 스포츠카의 모습 보다는 고급 세단을 연상케 한다. 고성능 냄새가 풍기는 디자인 감각이 더해졌다면 더 좋겠지만, 호화롭고 안락한 GT의 성격을 지닌 모습도 나쁘지는 않다.
시트의 형상은 스포츠 주행을 염두해 운전자의 몸을 잘 지지해준다. 버튼 배치와 구성은 간소화 됐는데, 디스플레이 하단에 위치한 세 개의 다이얼만으로 열선과 공조장치를 모두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심미성과 기능성을 모두 고려한 모습니다.
짐을 싣는 목적의 SUV는 아니지만, 적재 공간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트렁크를 열면 그런 당혹감이 조금 더 커진다. 이미 스페어타이어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기에, 트렁크 본연의 목적을 다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 4기통의 편견이 깨졌다.
F타입 P300은 4기통 모델이다. 생김새에 안어울리는 구성임은 자명하지만, 2.0리터 인제니움 엔진은 최고출력 300마력, 40.8kg.m의 부족함 없는 성능을 발휘한다.
엔진의 무게가 줄어든 탓에 차체 중량은 6기통 모델 대비 52kg 줄었고, 알루미늄 구조의 고강성 차체는 이전 세대의 XK보다도 200kg 이상 가볍다. 때문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불과 5.7초 만에 주파하는 부족함 없는 성능을 보인다.
일상 주행에서는 생각보다 편안한데, ‘안 나가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스포츠카가 주는 본연의 즐거움을 만끽하기엔 부족함이 없진 않을까 ?
아니었다. 배기량을 잊고 탄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즐겁다. 300마력이라는 출력이 체감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다. 가속은 초반에 집중된 모습. 물론 속도계가 수직보다 더 누워갈수록 배기량에서 오는 한계는 분명히 느껴진다.
8기통 엔진이 장착된 SVO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조율된 듯한’ 배기음과 스피커로 송출되는 가상의 사운드는 운전자를 충분히 자극한다. 나름대로 팝콘도 튀긴다.
움직임은 산뜻하다. 보다 가벼워진 차체에서 오는 플라시보 효과일까. 고갯길과 굽이진 고속화 도로에서의 움직임은 예리하고 절도 있으며, 생각보다 다루기 쉽다. 고출력 후륜구동 스포츠카가 부담스럽다면, 이쪽이 정답이다.
■ F타입 P300이 넘어야 할 벽, 포르쉐.
누군가에겐 출력이 부족할 수 있겠지만, 저출력에서도 재규어 고유의 움직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은 만족스럽다. 대배기량 고출력차가 부담스럽다면, 이쪽은 좋은 선택이다.
F타입 P300의 가격은 8800만원, F타입 라인업 중에선 유일하게 8000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이 가격대에 포르쉐 718이 아른거리는 게 문제다.
물론, 포르쉐에 공시된 가격은 어디까지나 ‘시작 가격’에 지나지 않는다. 옵션이 찻값을 넘어버리는 상황도 부지기수이기 때문.
무엇보다 F타입 P300은 포르쉐를 선택하는 고객과는 다를 것 같다. 스포츠카를 타고 싶지만, 흔한(?) 포르쉐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고, 조금 더 편안하면서도 부담 없는 주행을 즐길 수 있는 차를 선택하길 원하는 사람들 말이다.
다시 앞서 말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앞서 언급한 ‘부조리’의 영역을 하나라도 충족시킨다면, 스포츠카라 말하기 민망해지는 게 사실이다. 문이 두 개가 더해지면 스포츠‘세단’이 되고, 왜건 같은 적재 능력을 갖추면 그건 ‘슈팅브레이크’가 된다. 배기량이 낮고 느리면 스포츠카 축에 껴주지도 않는다.
F타입 P300은 ‘성능’에서 나름의 타협을 봤다. 배기량이 낮아졌지만,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재미는 남아있으니, F타입 P300은 꽤 합리적인 스포츠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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