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데일리카 박홍준 기자] 양 극단에 서 있는 정치 이념은 지양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양 극단에 서 있는 자동차는 지향하는 것이 마땅하다. 로터스가 그렇고, 랭글러가 그렇다.

벽을 등지고 저 끝을 바라보자니 쿠페형 SUV는 반동분자고, 소형 SUV는 회색분자다. 랭글러 앞에선 감히 ‘오리지널’을 논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리고 “이런 차로는 이런 곳을 달려야지”하는 길을 달렸다. 아니 정확히는 헤쳐 나갔다. 휴대폰의 신호도 잡히지 않는, 강원도 평창 어딘가의 아득한 산기슭을.

■ “어디가 바뀐거야?”

고충이었을까, 누워서 떡 먹기였을까.

랭글러의 디자인은 이전 세대의 모델인 ‘JK'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LED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이 더해졌고, 윈드실드는 조금 더 누웠다.

세븐 슬롯 그릴 상단의 지프 로고는 삭제됐다. 랭글러의 얼굴 자체가 지프를 상징하기 때문이리라. 성인 남성이 걸터 앉을 만큼 쭉 튀어나온 전면부 범퍼엔 안개등이 더해진 모습이다.

차량의 돌출된 부분들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덮여 있어 수리 및 스크래치로부터 조금 더 자유롭다. 여기에 각진 휠 아치와 반듯하게 자른 두부처럼 툭 떨어지는 루프 라인, 걸터앉을 수 있을 정도로 앞이 툭 튀어나온 범퍼는 요즘의 디자인 감각과는 거리가 멀다.

도어와 루프를 모두 탈거하면 랭글러의 가려진 알몸이 드러난다. 있는 그대로의 날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당장에라도 올라타서 거친 노면을 질주하고 싶어지는 본능을 자극한다.

신형 랭글러의 인테리어는 ‘비교적’ 투박하다. 소위 ‘데후’라고 했던 중간변속기를 마지막으로 봤던 게 언제인지 까마득 하다. 하지만 이 차가 랭글러 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되려 미래지향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유 커넥트’로 대변되는 FCA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직관성이 좋다. 여타 브랜드 못지 않게 한글화의 완성도도 높은 데다, 터치 스크린의 조작감도 스마트폰의 그것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만족스럽다.

이를 통해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는 물론, 오프로드 상황에서 차량의 등판 각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애플리케이션도 마련된 점은 이 차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 모델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여기에 기존의 크루즈컨트롤, 전복 방지 시스템, 내리막 주행 제어 장치가 기존과 동일하게 적용되며,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 후방 교행 모니터링 시스템을 추가 적용해 첨단 안전 사양도 업그레이드했다.

2열까지 충분히 마련된 USB 포트는 환영할 만 하지만, 수납 공간이 충분치 않다는 건 아쉽다. 컵홀더와 넉넉한 센터 콘솔을 갖추고는 있지만, 스마트폰이나 지갑 등을 둘 수 있는 공간은 마땅치 않다.

■ 명불허전

파워트레인은 기존의 3.6리터 엔진을 대체하는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이 적용됐다.

최고출력은 272마력,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가 결합되며, 복합연비는 리터당 9.0km를 인증 받았다. 높은 연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전 세대의 JK 보다는 효율이 36% 증가했다. 역사상 가장 연비가 좋은 랭글러인 셈이다.

온로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정숙성과 승차감이다. 기존의 랭글러는 오프로드에서의 승차감이 더 좋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는데, 온로드에서도 도심형 못지 않게 정숙하고 편안한 움직임을 보인다.

시승 차량은 오프로드 타이어가 장착된 ‘루비콘’ 모델이었지만, 일반 도로에 특화된 ‘사하라’ 모델이라면 더 좋은 승차감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오프로드 뿐 만이 아닌, 일상 주행의 목적으로도 부담없는 데일리카의 성격을 지니기에 충분하다.

스티어링도 기존 랭글러 대비 산뜻해진 느낌이다. 전통적인 유압식 스티어링이 적용되던 것과 달리, 신형 랭글러는 전동식 스티어링 휠을 적용, 조작 편의성과 정확도도 높였다.

오프로드에서 가솔린 터보 엔진, 어색하기가 짝이 없지만, 신형 랭글러는 거침없는 주파력을 선사한다. ‘과연 여길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불규칙한 바윗길에서도 거침이 없다. 확실한건 이 차가 아니면 지나갈 수는 없는 길이었다.

오프로드 주행법은 독특하다. 3시 방향과 9시 방향을 꽉 붙잡는 기존의 파지법과는 달리, 차량 주행 시 손가락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은 스티어링 표면에 올려둬야 한다.

액셀러레이터를 전개하는 방식 또한 일반 온로드 주행과는 차이를 보인다. 하나의 장애물을 넘어갈 때는 멈추지 않고 단번에 지나가야만 하는 것. 차량의 흔들림과 일시적인 멈춤도 주행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계곡에선 깊은 수심에 연신 차체의 밖을 내다보게 되지만, 랭글러의 도하 가능 수심은 최대 76cm. 어지간한 어른의 허리 깊이의 수심은 아무런 문제 없이 주파가 가능하다.

걸어 올라가더라도 부담될 것 같은 바위 언덕도 거뜬했다. 기계식으로 작동하는 랭글러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강제로 제동력을 분배해가며 거침없는 주행을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잦은 흔들림에 피로도가 높아질 만도 하지만, 안정적인 서스펜션의 복원력 탓에 험로에서의 승차감 또한 전 세대 대비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 더 보편적인 랭글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랭글러는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을지 모르겠다. 탐험가들과 자연인들에게 적합했을지 몰라도, 아이를 태우고 유치원을 가거나,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엔 부적합 했으리란 뜻이다.

하지만 신형 랭글러는 다르다. 보다 보편적인 승차감, 더 나아진 정숙성, 풍부해진 편의사양은 랭글러가 아닌, SUV 자체만으로 놓고 보더라도 훌륭해졌다. 조금 시끄럽고, 승차감이 나빠도 될 차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공략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보다 많은 트림이 구성됐으면 한다는 점이다. 기존 랭글러의 고객들은 국산 대형 SUV는 물론, 엔트리 급의 독일차를 살 수 있는 가격에 ADAS도 없고 승차감도 나쁜 직물시트 달린 차를 샀다. 랭글러 그 자체를 사랑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다수의 고객들은 자신의 차를 꾸미고, 가꾼다. 이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이듯, 도로에선 똑같은 랭글러, 혹은 순정 상태의 랭글러를 보기가 더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은 충성도 높은 지프 고객들을 위해서, 커스터마이즈에 특화된 저가형 트림을 선보일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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