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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추적>배우 김주혁 사망에 2억원짜리 수퍼카 'G바겐 안전성' 논란?
배우 김주혁(45)씨가 30일 오후 4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부근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가 몰던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수퍼카인 ‘G바겐’(모델명 G63 AMG). 이날 김씨 차는 앞서 가던 현대 그랜저 승용차를 두차례 추돌한 뒤 인도로 돌진했다. 이후 화단을 그대로 밀고 나가 근처 아파트 벽에 충돌한 뒤 아파트 정문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굴러 전복됐다. G바겐의 차체가 심하게 찌그러지는 바람에 구조대원이 40분간 구조 작업을 벌이고 난 이후에야 김씨를 차량에서 구출했지만,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사고 현장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김씨 차량이 안전성에 결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나오는 상황이다. 차체가 깡통처럼 찌그러지면서 심하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디테일추적>은 자동차업계를 오랜 기간 출입해왔고, 동시에 자동차 마니아인 조선일보 최원석 기자와 이 상황을 두고 이야기를 나눠봤다.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5년 전쯤부터 G바겐이라는 각진 SUV 자동차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빈티지’ 디자인이 독특하고, 워낙 육중해서 눈에 띄더군요. 예술·엔터테인먼트 계통 종사자들이 특히 많이 타는 것 같습니다.
“G바겐은 1979년 출시된 벤츠의 SUV입니다. 원래 ‘군용차’로 개발됐기 때문에 과거 지프형 자동차처럼 각이 져 있어요. 이 차는 험로 주파 능력이 탁월합니다. 안타까운 사고로 숨진 김주혁씨가 탄 모델은 ‘2세대 모델’로 요즘 판매되는 차량입니다. 국내 판매가가 2억원 이상입니다. 요즘 나오는 SUV는 대부분 매끄러운 디자인이다보니, 각이 지고 클래식하고 남성적인 G바겐이 오히려 ‘희소성’이 있어요. 과거 현대가 만들었던 ‘갤로퍼’처럼 단순한 디자인인데, 가격은 2억원(무옵션 기준, 옵션을 붙일 경우 3억원에 가깝다)이 넘다보니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명품’으로 통하면서, 몇 년 전부터 한국 부유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승해 본 사람들 말로는 ‘승차감이 상당히 불편하다’는 평가가 있던데 정말입니까.
“안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원래 군용차로 만들어서 승차감 보다는 ‘내구성과 험로주파능력’을 우선시한 모델이기 때문이죠. 그 불편함 마저도 G바겐 자체의 매력이자 가치이기 때문에, 일부에게는 오히려 이 차를 갖고 싶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가장 튼튼한 차’ ‘군용차’ ‘충돌 테스트장 벽도 뚫고 나가는 차’로 여겨지던 G바겐이 이번 사고로 처참히 찌그러진 모습이 공개되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일각에선 차량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차가 튼튼하다’는 건 ‘차의 뼈대’가 튼튼하다는 의미입니다. G바겐의 경우, 충돌시 전면부 범퍼쪽부터 부딪친다면 상당히 강한 차는 맞아요. 하지만 뼈대가 튼튼하다고 해서 꼭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덜 다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차체는 강해도 그 충격이 탑승자에게 더 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죠.
이번 사고는 ‘A필러’(전면 유리창 좌우를 버티는 기둥)가 아파트 콘크리트 외벽에 그대로 부딪친 것으로 보입니다. A필러는 그렇게 강하게 지지할 수 있는 구조물이 아니어서, 급가속 상태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에 충돌하면 이 정도로 부서집니다. 만일 다른 SUV 같았으면, A필러가 아예 형태도 없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부산에서 일가족 사망사고가 났던 SUV차량 사고 장면을 봐도 이해가 갈 겁니다. 물론 이번 사고는 그동안 알려져 있던 G클래스의 ‘통뼈 이미지’에 비해서는 많이 부서진 것으로 보입니다. 충격 부위와 충격 상황을 두루 따져봐야할 겁니다.”
-G바겐이 미국의 IIHS(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 NHTSA(미국도로교통안전국)나 유럽의 유로 NCAP(유럽신차평가프로그램) 등 각종 국제기관에서 받은 충돌 등급이 전무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유로 NCAP 데이터는 있는 것 같고, IIHS와 NHTSA는 자료가 없는데 좀 더 살펴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런 조사는 각국 정부에서 진행하는 겁니다.”
자동차 수입업체 관계자는 “대개 이런 충돌 등급 평가는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많이 팔리는 차량 위주로 실시한다”며 “G바겐은 ‘수퍼카’여서 각국 기관 평가 대상에 안 들어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주혁이 몰았던 G63 AMG는 최고출력 571마력, 최대토크 77.5kg.m의 5.5L V8 엔진으로 공차중량 2.6톤의 육중한 차량이지만 제로백(0~100km/h 도달시간)은 5.4초에 불과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충돌 당시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충돌한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일부 네티즌은 엔진 성능이 G바겐 보다 안 좋은 차량이었다면, 이 정도 규모로 큰 사고가 안 났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정말일까요.
“시속 100㎞ 이상으로 A필러가 콘크리트 구조물에 충돌하면, 그 어떤 차량도 안전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차량은 아예 상부가 전부 날아가거나 휴지조각처럼 갈갈이 찢겨나갔을지도 모릅니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바위 덩어리’ 같아서 데미지가 아주 큽니다. 차량끼리 충돌하면 서로 충격 흡수가 되지만, 바위 덩어리에 부딪치면 충격 에너지가 고스란히 차에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31일 김씨에 대한 부검을 진행했다. 부검 결과 사망의 직접 원인은 ‘즉사 가능 수준의 두부(머리) 손상’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