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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랠리카 연상시키는 프랑스산 핫해치.. 푸조 308 GT Line
해치백은 곧 무덤이라는 말로 직결되는 국내 자동차 시장.
폭스바겐 골프가 그 관념을 깨려는 듯 했고, 현대차 i30가 해치백 대중화의 선두에 서는 듯 보였으나, 두 존재의 공백은 곧 ‘시장의 공백’으로 직결됐다.
이는 폭스바겐이었기 때문에 팔렸고, 현대차였기 때문에 팔렸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덩달아 주목받던 푸조 308 역시 수입차 시장에서의 존재감도 미미해진지 오래다. 제대로 된 스파링 상대들이 이래저래 나가떨어지며 비어있는 링 위에서 혼자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는지도 오래 됐다.
그래서일까, 홀로 링 위에 올라있는 308의 가치는 유독 돋보인다. 이렇게 잊혀 지기엔 아쉬운 차고, 골프가 재 등판을 예고한 상황인 만큼 잊혀진 가치들은 더 빛난다.
■ 기본에 충실한 외관
최근 3008, 5008 등에서 보여지고 있는 푸조의 새로운 디자인 아이덴티티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308은 그럼에도 여전히 예쁜 디자인인 것만은 자명하다.
푸조만의 개성을 담은 펠린 룩은 거대한 공기 흡입구와 수평으로 길게 뻗은 그릴이 특징인데, 이는 보닛의 입체감과 더해 스포티한 인상을 배가시킨다.
헤드라이트와 보닛 사이를 가로지르는 절개선을 따라 후방으로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은 점차 상단으로 솟아 오르며 공격적인 느낌을 주고, 하단에 이어져 있는 제 2의 캐릭터라인은 전륜 휠 아치로 돌격하는 ‘쐐기’ 같은 느낌을 준다.
후면부는 디테일에 신경을 쓴 모양새다. 고양잇과 동물이 할퀸 자국을 연상케 하는 테일램프의 형상이 특히 그러한데, 푸조의 브랜드를 상징하는 동물이 사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독창적이면서도 재밌는 포인트다.
‘GT 라인’ 특유의 차별화된 외관도 돋보인다. 전면부 그릴과 옆면, 테일게이트에 GT라인 엠블럼이 배치됐으며, 후면부에는 크롬 소재의 트윈 머플러가 적용된 모습이다.
■ 가죽 소재로 고급감 더한 인테리어 디자인
인테리어는 푸조 특유의 독특한 감성이 돋보인다. 단연 눈에 띄는 건 차량 내부의 아이-콕핏(i-Cockpit) 시스템이다.
비행기 조종석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아이-콕핏(i-Cockpit)’ 시스템은 경쟁 모델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푸조만의 독특한 설계로, 실제 주행 상황에서도 운전자의 편의성을 강조했다.
속도계는 대시보드 상단에 배치됐는데, 운전자의 전방 시야와의 일체감이 강조돼 시선이 분산되는 효과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운전을 하면서 속도계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흘길 필요가 없다.
콤팩트한 사이즈의 스티어링 휠은 단연 돋보인다. 351mm x 329mm로 설계된 스티어링 휠은 기자의 손 크기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인데, 그립감과 조작감 모두 만족스러움은 물론, 스티어링 휠이 클러스터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보다 쉬운 운전이 가능하다.
308 GT라인의 스페셜 모델인 ‘레더 에디션’에 적용된 나파 가죽시트의 고급감은 돋보인다. 기존의 직물 혼합 시트를 사용하던 것과 달리 독특한 디자인의 가죽 시트가 적용됐는데 시트의 고급감과 착좌감 모두 한층 높아진 부분이 만족스럽다.
특히, 직물시트는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과 국내 소비자들의 낮은 인식 탓에 ‘저렴한 소재’라는 인식이 높은 편인데, 이러한 단점들을 한번에 종식시킬 수 있는 훌륭한 아이템이라는 생각이다.
센터페시아는 단순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버튼 배치가 최소화됐다. 대신 차량 내의 대부분의 기능을 터치스크린을 통해 작동시킬 수 있다.
다만 시거잭과 USB 포트가 단 한 개 뿐인건 아쉽다. 전자기기 사용이 점차 많아지는 만큼 기기 충전 편의를 위해서라면 포트가 조금 더 넉넉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 랠리카 연상시키는 주행질감..핫해치란 이런 것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스티어링휠과 속도계가 시야에서 완전히 정리됐다보니 운전하는데에 제법 수월한 포지션을 갖춘다. 조금 과장한다면 보닛 앞에 앉아서 운전하는 듯한 느낌이다.
308 GT라인은 1.6리터 블루 HDi 디젤엔진이 장착됐다. 최고출력은 120마력, 30.6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며, 아이신과 함께 개발한 EAT6 6단 자동변속기와 결합돼 14.6km/ℓ의 복합연비를 발휘한다.
보여지는 수치상으론 국산 준중형차 대비 낮은 마력수를 보이지만, 높은 토크를 지닌 탓에 일상 주행에서는 전혀 스트레스가 없다. 오히려 더 빠르다는 느낌이다. 이는 응답성이 높은 액셀러레이터의 세팅과도 무관하지 않다.
덕분에 속도를 올리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1.6리터 엔진을 장착했다는 언급이 따로 없었다면 2.0리터 엔진이라고 착각하기에 딱 좋은 주행 성능이다.
스티어링의 무게감과 하체 세팅은 컴포트한 성향에 중점을 맞춘 것으로 보여진다. 시내 주행에서는 한없이 나긋하고 편안한 운전 감각을 선사하는데, C 세그먼트에 속한 해치백이지만 시내 주행에서 느껴지는 승차감이 제법 안락하다.
고속 주행에서는 나름의 ‘운전 재미’를 선사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특히 핸들링 성능이 유독 눈길을 끄는데, 단단함에서 오는 운전 재미를 추구하는 독일차와는 달리 소프트한 승차감을 지녔음에도 차체의 거동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 제법 흥미롭다.
완전히 똑같은 비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 해 말레이시아에서 시승해본 시트로엥 DS3 랠리카의 감각이 문득 떠올랐다. 다소 뒤뚱거리는 듯 한 거동을 보이지만 그 기본기만큼은 탄탄한, 재밌는 주행을 구현했던 랠리카를 연상시키는 주행감각이다.
이는 분명 저출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고출력에 이런 세팅을 가졌다면 거동을 잃고 미끄러졌을 것만 같지만, 되려 200마력 이하의 저출력에서는 제법 재밌는 움직임으로 작용한다.
국내에선 익숙하지 않았던 MCP 변속기를 포기한 건 신의 한수다. 푸조의 단점을 지적하는 많은 여론 중 하나는 수동변속기 기반의 MCP 변속기였는데, 운전의 재미와 효율성은 높지만 특유의 꿀렁이는 듯 한 변속 충격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만은 않았다.
효율은 제법 떨어졌겠지만 EAT6 변속기는 이러한 단점들도 완벽하게 커버해낸다. MCP에서 느껴지던 변속기 자체의 직결감은 그대로 살려내면서도 거부감 드는 특유의 변속충격들은 덜어냈으니, 단점으로 지적되던 부분들은 완벽히 상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푸조 308 GT라인 레더 에디션의 시장 경쟁력은...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스승’이라는 말이 있지만, 수입차 시장에서 폭스바겐이라는 ‘호랑이가’ 자리를 비운 이후 그 누구도 ‘여우’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말 그대로 무주공산이다. “골프가 판매되던 시절보다 되려 판매가 줄었다”는 푸조 관계자들의 푸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폭스바겐이 판매 재개를 위한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이 때. 지금 우리가 푸조 308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시승한 푸조 308 GT 라인 레더 에디션의 가격은 348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