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조선
"남편 시중이나…" 女주차단속원이 딱지 떼면 코웃음
[제복의 수난] [4] 여성 단속원에 무시·욕설 다반사
"야" "너" "아줌마" 호칭은 기본 "X 팔면 돈 더 번다" 성희롱도
상인들은 "장사 못하게…" 삿대질
10년전 단속반, 여성 위주였지만 온갖 괄시에 女비율 20% 밑으로
지난달 28일 오후 가을 운동회가 한창인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앞. 승용차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골목엔 불법 주차한 차 4대가 서 있었다. 학교 앞은 특별 단속 구역이다. 불법 주정차한 차들 사이로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다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송파구청 소속 주차단속원 한모(여·59)씨가 동료 여성 단속원과 불법 주차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 남성이 "아줌마들, 적당히 좀 해. 애들 안 키워보셨나?"며 핀잔을 주고 지나갔다. 한씨는 기자에게 "이 일을 시작한 8년 전부터 늘 듣던 이야기다. 우리가 남자였어도 저렇게 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제복 공무원(MIU·Men In Uniform) 중 여성이 겪는 수난은 상대적으로 더 심하다. 남성 민원인의 욕설과 협박, 성희롱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욕설·협박에 시달리는 여성 제복들
10여 년 전 서울시는 20대 여성 위주로 불법 주차 단속반을 꾸렸다. 운전자와 마찰을 빚지 않고,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현재 서울시와 자치구 소속 주차 단속 공무원 876명 중 여성은 158명으로 전체의 20%도 되지 않는다. 한 구청 관계자는 "험한 소리를 많이 듣는 일이라 점점 여성 비율이 줄고 있다"고 했다. 서울 자치구 25곳 중 여성 단속원이 아예 없는 자치구가 5곳이다.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구로 1교 부근의 한 도로. 불법 주차 단속원 박영희(여·44)씨 차 앞을 흰색 승용차가 가로막았다. 흰색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박씨 차량의 창문을 두들기며 과태료 용지를 마구 흔들고 욕설을 퍼부었다. 박씨 차에는 '공무 수행'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성 단속원은 대부분 40~50대 주부들이다.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주일에 29시간을 일하고 월급은 100만원 남짓 된다. 박씨는 "단속 나가면 'X년' '야' '아줌마', 이렇게 불리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며 "눈물이 나지만, 가족들 생각하며 참는다"고 했다.
말뿐 아니라 실질적인 위협에 시달린다. 지난달 18일 주차 단속원 김모(여·51)씨는 서울 송파구의 한 길가에 불법 정차 중인 1.5t 트럭을 단속했다. 운전자는 김씨의 제지를 무시하고 후진했다. 그 바람에 김씨는 바퀴에 발등이 밟혀 인대를 다쳤다. 병가를 내고 열흘 넘게 입원해야 했다.
성희롱·성차별 발언을 듣는 일도 많다. 한 여성 단속원은 "가끔 '집에 가서 남편 시중이나 들어라''× 팔면 돈 더 번다'는 노골적인 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며 "싸워봐야 손해니까, 모르는 척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소방도로 단속에 민원 제기
남성 불법 주차 단속원이라고 수월한 건 아니다. 지난 8월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선 흥분한 80대 남성이 곡괭이를 들고 나와 휘두르며 서울 노원구청 소속 단속원(41) 앞에서 "죽여 버린다"고 소리를 질렀다. "소방차 진입로였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단속원은 경찰을 불러야 했다.
정당한 공무 집행이 민원 대상이 된다. 불법 주차 단속원들은 비상시 소방차 진·출입로 확보를 위해 이면도로를 집중 단속한다. 주택가나 전통시장 근처가 많아 지역 주민의 항의에 몸살을 앓는다. 서울 노원구청 소속 단속원들은 단속 차량을 타고 한 골목에서 순찰하며 '황색 실선·점선 안에 차를 대면 안 된다'는 안내 방송을 했다. 그러자 인근 가게에서 40대 여성이 달려나왔다. "요즘 장사도 안 되는데 왜 주차 단속을 하느냐"며 삿대질했다. 전통시장은 주차 공간이 부족해 불법 주차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구청은 전통시장 상인 보호를 위한다며 '시장 근처는 최대한 단속을 자제하고 계도 중심으로 하라'는 내부 지침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