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시장에 ‘캠코드(Camcord)’라는 말이 있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일본산 중형 세단을 일컫는 말로, 이는 토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를 뜻한다.

캠리는 이러한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강력한 시장 영향력을 지닌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에서 토요타 캠리를 공공연한 라이벌로 지목하지만, 판매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니까 말이다.

캠리가 국내 시장에서 인지도를 타기 시작한 것도 미국 탓이 크다. 미국에서 캠리를 타던 유학생들, 혹은 재미교포들이 한국을 찾아오며 캠리를 들여오기 시작했고, 토요타가 국내 시장에 출범하기 전, 캠리는 준대형 세단 ‘아발론’과 함께 조용한 유명세를 누렸다.

이 때문에 캠리는 국내 시장에서 정식 출시한 이후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독일차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수입차 시장이라지만,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와의 경쟁구도에서도 하이브리드 라인업으로 제법 재미를 봤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캠리가 어느덧 8세대 모델로 풀 체인지 됐다. 국내 시장에서 그랜저를 공공연한 라이벌로 지목한 캠리는 어떤 시장 경쟁력을 지녔을까, 잠실에서 양평을 오가는 왕복 100km 구간에서 8세대 캠리 하이브리드를 시승했다.

■ 낮설면서도 익숙한 외관 디자인

마치 크게 입을 벌린 듯 한 느낌을 담아낸 전면부 범퍼 디자인이 시선을 모은다.

토요타의 디자인아이덴티티 ‘킨룩’(KEEN LOOK)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약간은 낮선 느낌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나쁘게 표현하자면 ‘괴랄한’ 인상을 담고 있다.

이러한 디자인 언어는 토요타의 럭셔리 브랜드 렉서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디자인 방향과 유사하다는 생각이다. 안정적인 프로포션을 지녔지만, 복잡한 선과 면 탓에 처음 보면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디자인 말이다.

중형 세단에 이정도의 파격을 가미하는 건 현대차가 과거 선보인 ‘YF 쏘나타’ 이후로는 오랜만이다. 디자인의 방향성은 완전히 다르지만, 첫 눈에 파격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저중심으로 새롭게 설계된 TNGA 플랫폼 탓에 측면에서 바라본 비례감은 인상적이다. 기존의 캠리가 전통적인 전륜구동 패밀리세단의 형태를 지녔다면, 신형 캠리는 후륜구동 형태의 비율에 가까운 인상이다. 낮은 차체와 긴 보닛, 짧은 트렁크 리드라인 등이 그것이다.

비례감은 좋지만 난립한 캐릭터 라인 탓일까. 측면부에서 보여지는 라인들의 구성도 제법 복잡하다. 마치 쐐기를 연상시키는 측면부 캐릭터 라인이 그렇고, C 필러에서 벗어나 급격하게 꺾여나가는 캐릭터 라인이 그렇다. 아직은 조금 적응이 필요한 디자인이다.

그에 반해 후면부 디자인은 안정을 추구한다. 후면부의 인상은 윗급의 아발론과 비슷한 감각인데, 테일램프는 그 보다 얇고 길게 세팅된 탓에 보다 커보이는 인상을 준다.

앞의 설명들을 종합적으로 풀어내자면 적응 안되는 이상한 디자인이라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예쁘다. 여지껏 말한 내용들을 모두 뒤집는 논리일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괜찮다는 느낌이다. 연예인들의 매력 포인트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어색한 얼굴이 된다는 논리가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겠다.

■ 안락감과 편의성 강조한 실내..패밀리 세단의 교과서라 불릴만..

운전석의 문을 열고 실내를 바라보면 운전석과 조수석이 분명히 분리됐다는 것이 제대로 느껴진다. 실내를 천장에서 바라본다면 아마 견고한 보호막이 운전자를 감싸는 듯한 인상일 것이다.

비대칭 형태로 설계된 센터페시아의 인터페이스는 제법 익숙하게 다듬어졌고, 조작 편의성을 극대화 하기 위해 터치스크린에 위치하는 버튼들을 물리 버튼으로도 한번 더 배치했다.

토요타는 캠리에 저중심 설계에 TNGA 플랫폼을 적용해 운전자의 시트포지션은 낮아졌다고 강조한다. 물론 운전자의 시야를 높이기 위해 대시보드도 함께 낮아졌으며, 보닛 또한 함께 낮아졌다.

다만, 그럼에도 높다고 느껴진다. 시야가 워낙 좋은 탓일지 모르겠지만, 시트를 맨 아래로 내리더라도 운전자의 어깨는 도어 트림을 넘어선다. 차체가 낮아졌다는 걸 느끼려면 문을 열고 한쪽 발을 바깥으로 내딛어봐야 하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

2열 거주성은 만족스럽다. 키 181cm의 기자가 운전석에 앉을 때엔 시트포지션을 가장 낮게 설정해도 헤드룸에 여유가 없었지만, 2열 탑승자를 배려해 헤드룸을 깎아낸 것이 돋보인다.

현대차 쏘나타와 그랜저가 동급 최고 수준의 넉넉한 2열 공간을 제공하지만, 캠리도 이에 뒤처지지 않는다. 다리를 꼴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아니지만, 1열 탑승자가 충분한 시트포지션을 설정하고도 불편함 없이 앉을 수 있다.

■ 하이브리드 종갓집의 맛깔나는 주행성능..정숙성은 아쉬워

캠리 하이브리드는 178마력을 발휘하는 2.5리터 가솔린 엔진, 120마력급의 전기모터를 결합해 시스템출력 211마력을 발휘한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출력이 156마력,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159마력인 점을 감안한다면 동급 최고수준의 성능이다.

이 때문인지 캠리 하이브리드의 출력은 주구장창 여유로운 모습이다. 캠리에 적용된 무단변속기(CVT)는 동력을 이끌어내는 모습이 제법 수준급인데, 기존의 CVT 차량들이 엔진 회전수만 높아지는 데에 반해 가속감을 별반 느끼지 못하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넘치는 출력을 가졌지만, 엔진과 모터가 함께 작동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특성상 순간적으로 풀 가속을 하는 상황에서는 가속 반응이 더디다. 가속 페달을 점차 세게 밟아가며 지긋이 가속하는 것이 더 빠른 편이라는 생각이다.

와인딩 로드에서의 움직임은 의외로 발군이다. 하이브리드 배터리가 차체 하단으로 이동하며 무게 배분에 이득을 봤다는게 토요타 측의 설명인데, 이 밖에도 새롭게 설계된 서스펜션과 TNGA 플랫폼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쫀쫀하다’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는 캠리의 움직임은 컴포트함과 다이내믹함이 공존한다. 스티어링 휠은 생각보다 가볍지만, 급격한 코너링과 차선 변경 상황에서의 롤링과 안정감은 제법 만족스럽다. 독일차처럼 마냥 단단하지도 않고, 기존의 일본차들처럼 편안하기만 하지도 않다. ‘와일드 하이브리드’라는 슬로건을 내건 게 수긍이 가는 이유다.

다만, 정숙성은 조금 아쉽다. 배터리로만 바퀴를 굴리는 EV 모드 상태에서는 마냥 조용하지만, 고속에서 엔진이 개입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약간은 거친 4기통 엔진 특유의 소리가 밀려들어온다. 엔진 소음을 줄여 일체감있는 정숙성을 구현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엔진이 개입하는 상황에 이질감이 드는 건 아니지만, 엔진에서 발생하는 NVH도 꼼꼼하게 신경 쓴 그랜저 하이브리드와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토요타가 캠리 전 라인업에 기본 적용한 첨단 안전 시스템 ‘토요타 세이프티 센스’는 동급 일본 중형차에서 가장 우월하게 느껴지는 강점이다.

그러나 스티어링 휠의 조향을 함께 보조하는 차선이탈 경고 시스템은 차량이 차선을 벗어나고서야 조향을 한다는 부분에서 다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주행 보조’의 개념이 아닌 ‘안전 시스템’이라는 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겠다.

■ 캠리 하이브리드의 시장 경쟁력은...

캠리는 차급으로 본다면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경쟁하는 것이 맞겠지만, 차량의 가격과 구성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랜저와 객관적인 비교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뛰어난 상품성과 합리적인 가격은 캠리의 강점이다. 캠리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4250만원으로, 그랜저 하이브리드에 동일한 구성을 패키징할 경우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한다. 풀 체인지가 임박한 어코드 하이브리드 보다도 저렴한 가격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가성비’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그랜저를 이기는 건 계란으로 바위깨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승을 해본 캠리는 제법 경쟁력을 갖춘 그랜저의 훌륭한 스파링 상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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