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연합뉴스


충남의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이 마을을 지나 주변 야산으로 가는 장의차를 가로막고 ‘마을발전기금’ 명목으로 통행료 500만원을 요구한 일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시신이 상할까 염려한 유족들은 한낮 뙤약볕 아래에서 한 시간 넘게 있다가 결국 350만원을 건네고 이 마을을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14일 세계일보에 따르면, 지난 8월 8일 오전 8시가 채 안 된 시각 충남 부여군 내 한 마을의 노인회관 앞 폭 5~6m 도로에서 마을 주민 너댓명은 1톤(t) 트럭으로 대전에서 온 장의차를 가로막은 채 통행료 300만원을 내지 않으면 통과시켜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마을 이장 A씨는 이날 오전 7시쯤 매장용 묘지 굴착을 준비하던 굴착기 기사에게 달려가 작업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이 장의차에는 이모(56·여)씨의 이틀 전 별세한 어머니의 시신이 실려 있었다. 이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어머니의 시신을 10여년 전에 사둔 야산에 매장하기 위해 모셔왔다.

이씨는 “대전에서 장의차에 타고 오면서 장례를 도운 장의업체 직원과 통화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통행료 300만원을 안 내면 장의버스가 마을 옆길을 통과할 수 없다며 도로를 막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설마 했는데 마을 입구에 있는 노인회관 앞에 도착하니 1t 트럭이 좁은 도로를 차단한 채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쪽에서 ‘세상에 이번 법이 어디 있나. 마을 옆에 묘소를 쓰는 것도 아니고, 1.5㎞나 떨어진 마을에서 보이지도 않는 산속에 묘지를 조성하는 데… 절대 돈을 못 준다’고 했더니, 마을 사람들이 ‘300만원이 안 되면 마음대로 해라. 이젠 500만원 안 내면 절대 통과 못 시킨다’며 되레 액수를 올리고 화를 더욱 내 기가 찼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시간이 가도 길을 터 줄 기미가 없어 우리 쪽에서 하는 수없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찜통더위 때문에 어머니의 시신이 상할까 걱정한 5남매는 차 안에서 즉석 유족회의를 한 결과 경찰이 오면 양쪽 다 조서를 받아야 하고 잘못되면 장례가 하염없이 늦어질 수 있으니 금액을 최대한 낮춰서 합의를 보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하고 맏상주인 오빠가 나서서 350만원에 합의를 본 뒤, 급히 경찰에 다시 전화를 걸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유족들은 결국 한 시간 넘게 대치하다가 현금 350만원을 준 뒤 영수증을 받고, 이날 오전 9시 16분이 넘어서야 장지로 출발할 수 있었다.

서울에 돌아온 이씨는 너무나 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진정서를 냈다. 그는 진정서에서 “우리도 처음엔 이해가 안 됐지만 나중엔 100만원까지는 줄 용의가 있다고 했는데, 오히려 500만원으로 올리더라”면서 “이건 마을 발전을 위한 ‘선의의 통행세’가 아니라 명백한 갈취행위이고 장례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등 범법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을 이장은 “돈은 강요 안 했다. 주겠다고 해서 받은 것뿐이다. 유족들이 반발한다니 떨떠름하다”고 주장했다.

이장은 이어 “마을 옆 300m 이내에 묘지를 쓸 수 없도록 한 장사법이 개정된 10여년 전부터 우리는 300m 이내엔 어떤 경우도 묘지를 못 쓰게 하고 있고, 300m를 넘는 경우엔 마을 발전을 위한 자발적인 통행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한편 개인묘지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5조에 20가구 이상의 인가 밀집지역 등으로부터 300m 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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