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자동차 산업]

中서 47%, 美서 9% 판매 줄어…
가성비로 세계 잠식했던 한국車… 저가 중국車와 고급 일본車 사이 갈팡질팡하다가 '샌드위치' 신세
日언론들 "한국車 가격 경쟁력 중국에 뺏긴 뒤 아무 반격 못해"
'쇳물부터 車까지' 수직계열화가 IT업체와의 '열린 협력'을 방해… 첨단 기술 경쟁력 떨어뜨려

"현대자동차는 '자괴(自壞·스스로 무너짐)'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달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이 현대자동차 위기를 진단하면서 서술한 문구다. 현대차 위기는 곧 한국자동차산업의 위기이다. 한국자동차는 중국 '사드 보복'에서 출발한 글로벌 판매 부진 심화, 근본적인 경쟁력 한계, 고질적 노사 갈등 등 '삼중고'가 겹쳐 고전하고 있다.

6년 전엔 달랐다. 2011년 일본에선 "현대차 성공 비결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충고가 잇따랐다. 당시 일본 자동차학계 권위자 고바야시 히데오 와세다대 교수는 '현대차가 도요타를 이기는 날'이라는 책을 통해 "품질 향상에 대한 현대차 최고 경영자들의 불같은 의지와 뚝심은 연구 대상"이라고 할 정도로 높게 평가했다.

현대자동차 울산 3공장 생산라인. 이곳에서는 아반떼와 i30, 아이오닉을 생산한다. 올 들어 국내 자동차업계는 판매 부진으로 위기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고질적인 노사 갈등이 또다시 이어지면서 위기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런데 지금은 딴판이다. 산케이뿐 아니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도 "저가를 앞세운 중국차 공습에 대비, 일본은 고급 세단 등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했지만, 한국은 어중간했다"고 일침을 놓았다. 산케이는 "마쓰다(일본)는 '편리한 조작', 폴크스바겐(독일)은 '좋은 연비'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한국차는 강점이던 '가격 경쟁력' 주도권을 중국에 뺏긴 뒤 아무 반격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요즘 한국 자동차업계는 '역대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어둡다. 상반기 국내 자동차업체 수출량은 132만5710대로 지난 2009년 이후 가장 적었다. 표면적으론 중국 '사드 보복'을 꼽는다. 상반기 현대·기아차 중국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7% 줄었다. 중국 부진의 탈출구로 기대를 모았던 미국 시장도 상반기 9% 뒷걸음질 쳤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국내 자동차 산업은 국내제조업 생산액의 13%, 고용의 12%를 차지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라며 "한국차의 위기 극복 없이는 한국경제의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가격 경쟁력 약화 이후 '샌드위치'"

그동안 한국 자동차는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다는 점을 내세워 세계 시장을 공략했다. 그러나 중국산이 등장하면서 이런 장점이 희석됐다. 도요타 등 일본 업체가 고급 세단과 친환경차(하이브리드 등)로 변신하는 동안 한국차는 갈팡질팡하다가 브랜드력(力)을 내세운 독일·일본차와 저가 중국차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

연구개발(R&D) 투자에 소홀했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다. 작년 현대·기아차 매출액 대비 R&D 투자액은 2.7%. 도요타(매출액 대비 3.8%)와 폴크스바겐(6.3%), GM(4.9%)에 크게 못 미친다. 산업연구원은 "한국 업체 친환경차 기술은 일본·미국의 80~90%, 지능형 스마트 기술은 일본·독일의 70%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R&D 비중이 비교적 낮은 이유 중 하나는 근로자 임금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점이던 '수직계열화'가 단점으로

원가 경쟁력의 바탕이 된 '쇳물부터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직계열화는 자동차 원재료(강판)부터 제조·판매, 운송·금융까지 전 과정을 계열사로 두는 것으로, 빠른 생산과 원가 절감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현대차는 현대제철~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캐피탈 등이 일사불란하게 작동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수직계열화를 통해 글로벌 업체들의 하드웨어를 더 값싸게 모방하며 성장했지만, IT(정보통신) 등 각종 기술의 융복합이 강조되는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과거 전략은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품업체들의 자체 생존력도 약화되고 있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중국에서 판매 부진을 겪자 함께 진출한 부품업체들까지 직격탄을 맞고 최대 50% 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글로벌 업체들은 미래 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기업과 활발하게 합종연횡을 벌이는데 한국은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것도 문제다. 도요타만 해도 최근 일본 경쟁사들(마쓰다·스바루·스즈키)과 전기차 개발을 위한 업무 제휴를 맺기까지 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그동안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혼자 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집착했다"면서 "이제는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오픈 이노베이션' 철학을 바탕으로 깔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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