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금요일 자정 무렵. 서울 종로구 종각 인근에서 회식을 끝내고 나온 직장인 A(30)씨는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 앞에서 손을 흔들었지만 30분 동안 빈차 한 대 볼 수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 카카오택시 앱으로 목적지 신촌을 입력한 ‘콜’은 매번 취소됐다. 그는 결국 신촌 집까지 2시간을 걸어가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A씨가 발을 동동 구르던 종각역에서 약 1km 떨어진 광화문 동화면세점 뒷골목에는 10여대의 택시가 시동을 끄고 쥐 죽은 듯 대기하고 있었다. 택시기사 B씨는 휴대폰에 카카오택시 콜이 뜰 때마다 목적지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대부분 신촌·이대 등 단거리 운행만 뜰 뿐 강 건너 남쪽으로 가는 건 보이질 않았다. 한참 뒤에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동탄 신도시였다. B씨는 콜을 받고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국내 최대 모바일 플랫폼 기업 다음카카오가 개발한 카카오택시라는 IT혁신이 일상에 파고든지 꼭 2년이 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택시를 잡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는 소비자들은 오히려 많아지고 있다. 창문을 내려 승객들의 목적지를 구태여 묻지 않고도 스마트폰에 뜬 ‘콜’을 쓱 쳐다보는 것만으로 알아낼 수 있게 된 택시 기사들이 골목에 숨어 원하는 승객을 ‘선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들이 원하는 목적지로 향하는 승객을 선택할 수 있게 한 카카오택시의 작동 방식이 ‘간접적 승차거부’를 제도화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뒷길에 예약 등을 켜고 대기 중인 택시/사진=이경민 기자


◇카카오택시, 탄생부터 사업자 편의 중심 시스템…우버는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

최근들어 도로에서 택시가 사라지는 이른바 ‘택시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강남권 승객만 택시 호출에 응답받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가 택시 사업자 편의 중심으로 설계된 카카오택시 시스템 때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카카오택시는 승객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택시를 호출을 하면 이 서비스에 가입한 택시기사에게 승객의 목적지가 공개돼도록 설계됐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O2O(온라인·오프라인 결합) 시대’가 카카오택시를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택시들이 도로 위를 이동하며 직접 승객을 태웠지만, 이제는 카카오택시 덕분에 도심 구석에 정차해 있다가 원하는 목적지로 향하는 승객의 호출을 기다리거나 일부러 ‘빈차’ 등을 꺼두고 운행하는 택시기사들이 늘었다. 거리에서 택시를 잡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카카오택시는 2015년 3월 출시된 이후 2년 만에 가입자 1300만명을 모았다. 지금은 국내 최대 콜 택시 서비스 사업자로 성장했지만, 출시 초기에는 수십개의 기존 콜택시 업체들의 반발 속에 이들과 경쟁해야 처지였다. 카카오택시는 회원 확보를 위해 택시사업체들에 문을 두드렸다. 초기 서비스를 구축하는 과정을 택시 사업자와 함께 진행한 것이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카카오가 카카오택시 서비스 관련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운영, 홍보를 담당하는 대신, 택시연합회는 기사 회원을 확보하고 서비스 관련 주요 정책 수립에 조언하는 식이었다.

또 연회비와 수수료를 내야하는 기존 콜 택시와 달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이용하는 택시기사에 최고 4만원의 사례금을 지급하는 등 금전적인 혜택을 제공한 것도 택시 업계에 빠르게 진출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 교수는 “카카오가 공짜 수수료 전략을 내세운 결과, 택시 기사들이 기존 사용하던 콜택시를 버리고 카카오택시로 대거 몰려 카카오가 콜 택시 서비스를 점령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에서 시작돼 세계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모바일 콜 택시 서비스 ‘우버’는 승객 편의에 중심을 두고 있다. 우버는 카카오택시와 마찬가지로 승객이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지만 콜을 받은 기사는 승객이 있는 위치에 도착하기 전까지 목적지를 확인할 수 없도록 돼있다. 또 우버 본사가 택시 기사에게 운행 1건 당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에 운행 거리와 상관없이 승객을 태울 수 있다.

지정 대여소에 고정돼있는 '따릉이'(왼쪽). 자체 잠금장치 기능으로 거치 장소가 지정돼있지 않은 '모바이크'/서울시, 모바이크 제공


사용자 편의보다는 사업자 편의 중심적으로 설계된 운송 시스템은 또 있다. 서울시가 도입한 자전거 대여 서비스 ‘따릉이’다. 따릉이는 스마트폰 앱으로 사용 등록을 하고 결제를 자전거를 빌려탈 수 있는 서비스인데, 시내 지정된 따릉이 대여소까지 직접 가서 자전거를 고르고 반납도 지정된 대여소에서만 할 수 있다는 점이 불편을 사고 있다.

도심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걷기엔 다소 멀고 택시를 타기엔 가까운 1~3㎞ 안팎 목적지로 향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여소가 있는 곳까지 1㎞이상 걸어야해서 따릉이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중국 자전거 공유업체 ‘모바이크(Mobike)’는 사용자 편의성이 높은 성공한 교통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지정 대여소가 따로 없고 자전거에 GPS가 내장된 잠금장치가 설치돼있어 앱을 통해 가장 가까이 있는 자전거를 찾아 타면 되고 어디에나 자전거를 두고 떠날 수 있다.

결제할 때도 위챗페이 등과 연동돼 모바일 메신저로 바로 결제를 할 수 있는 반면, 따릉이는 신용카드나 교통카드, 휴대폰 결제만 가능한 상태다.

◇공짜 수수료가 키운 독점이 교통 불평등 초래…목적지 공개 안하는 ‘콜 택시’ 체제로 복귀해야

카카오측은 택시품귀 현상이 수요와 공급 불일치의 문제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기사들도 필요에 따라 이동을 하는데 승객의 목적지와 기사의 목적지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이와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제재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배차를 늘려 연결의 기회를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기사들이 승객들의 목적지에 따라 승객을 선택하는 것은 승차거부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무조건 제재하기 보다는 효율적으로 연결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목적지 정보를 기사에게 공개하지 않고 수수료를 받는 예전 콜 택시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카카오택시가 택시기사와 승객들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목적지를 공개하지 않는 등 기존 콜 택시 체제로 돌아가게 되면 더 많은 업자들이 모바일 택시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하고 소비자 편의를 높일 수 있는 택시 서비스가 생겨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카카오와 지역 택시 사업자에 목적지 정보를 공개하지 않도록 하거나 수수료를 부과할 것을 권고하는 방식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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