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디트로이트는 직항으로 12시간이 걸린다. 겨울은 서울보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 현대차가 북미 지역 차에 부식 방지 처리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이런 날씨 때문이다.

디트로이트로 날아갑니다. 인천공항에서 12시간. 까마득합니다. 지루한 비행을 견디려고 홍대 뒷골목에서 즐겨 마시던 잭콕을 진하게 부탁합니다. 영화 ‘스내치’의 한 장면처럼 한 잔 탁 마시고 푹 자고 일어나니 도착 1시간 전입니다. 놀랍습니다. 알고 보니 뒷바람이 불어 비행기를 밀어줬습니다. 땡큐!

하늘에서 본 디트로이트

창밖으로 디트로이트가 보입니다. 미국 오대호 인근의 공업지역. 마이클잭슨과 에미넴의 스튜디오 ‘모타운’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진정 무서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월마트 주차장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내가 산 누텔라를, 내 흰 나이키 운동화를 누군가 노리지 않을까 바짝 쫄아들어 주위를 살피며 차로 걸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1900년대 초반 포드

이곳 시간은 1월 8일. 모터쇼 개막 전날 오전입니다. 며칠간 이어진 강추위와 눈으로 거리는 꽁꽁 얼었습니다. 그나마 조금 풀려서 영하 6도쯤. 이렇게 추운데서 무슨 컨벤션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1903년 이곳에 자동차 공장을 세운 헨리 포드를 생각하며 이해해주기로 합니다.

디트로이트의 GM 본사가 있는 르네상스센터

숙소는 디트로이트모터쇼가 열리는 코보센터에서 걸어서 8분 거리인 메리어트입니다. GM의 그 유명한 실린더 형태의 타워가 있는 곳입니다. 모두 강가에 위치해서 날씨만 좋고(안전하다면) 강변으로 걸어가도 좋겠는데 춥고 무서워요.

디트로이트 메리어트 호텔에서 바라본 디트로이트 강과 윈저터널의 입구

호텔에 들어가니 창 밖에 미국과 캐나다가 동시에 보입니다. 강의 이편은 미국이고 저편은 캐나다입니다. 북쪽이 캐나다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도를 살펴보니 남쪽이 캐나다입니다. 절묘하게 생겼습니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아들이던 헨리 포드는 디트로이트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디어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디트로이트의 증기기관 회사와 에디슨 전기회사를 거쳐 자신의 자동차 회사를 이곳에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자동차의 도시가 된 것입니다.

구글 지도로 살펴본 디트로이트

호텔에 짐을 풀고 오후 시간은 모터쇼의 사전답사를 하기로 합니다. 보통 모터쇼 개막 전날 낮에는 몇몇 기조연설과 세미나가 열리며 저녁에는 각 브랜드별로 행사를 개최합니다. 최근에는 이 행사에서 모터쇼에 보여줄 신차를 먼저 공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자동차 회사가 여러 브랜드의 그룹 형태로 운영되면서 각 그룹마다 보여주고 싶은 내용을 긴 시간동안 저녁 식사를 주며 선보입니다. 모터쇼의 발표시간은 고작 15분~20분 내외거든요.

코보센터의 광고판들

코보센터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구글로 검색하니 걸어가면 10분, 무인 모노레일인 ‘피플무버’를 타도 10분, 차를 타면 3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차는 없으니 패스. 창밖으로 살펴보니 한 눈에 보이는 길거리에 사람도 한 명 없어서 안전해보입니다.(라고 쓰고 속으로 쫄았습니다) 걸어갑니다. 메리어트 호텔이 있는 GM의 르네상스 타워를 빠져나가는데 만 시간이 꽤 걸립니다. 원형의 건물이 사방의 다른 건물과 연결돼 방향감각을 상실케 합니다.

거리에 나오니 눈과 찬바람이 맞이합니다. 코보센터로 걸어갑니다. 캐나다로 오가는 해저 터널에서 나온 차들이 교차로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횡단보도에는 호텔 창으로 미처 확인하지 못한 한 분이 서 있습니다. 50대쯤으로 추정되는 흑인 남성은 박스에 영어로 뭐라 써 놓고(아마도 돈 달라는 얘기인가 봅니다) 해저터널에서 나오는 차들에게 손짓을 합니다. 제가 횡단보도 멀리서 지켜보다 보행자 신호가 들어온 것을 보고 샤샤삭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뒤통수에 뭐라 뭐라 영어가 꽂힙니다. (나중에 보니 이분 매우 성실합니다. 서너 시간 뒤에 돌아올 때에도, 다음 날 모터쇼 갈 때에도 항상 여기 나와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운데)

자율주행차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코보센터는 아담합니다. 우리나라의 코엑스와 비슷해 보입니다. 전면의 대형 전광판에는 모터쇼를 안내하는 광고가 나오고 우측의 대형 광고판에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광고가 번갈아 나오고 있습니다. 실내로 들어서자 살짝 문 너머로 보이는 부스는 준비가 한참입니다. 카펫을 깔고 차를 올리고 마무리를 합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커다란 홀에서는 자율주행 세미나가 열립니다. 내일 아침 ‘북미 올해의 차’를 발표할 장소입니다.

디트로이트 코보센터가 보인다. 대형 안내판도 있다.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로 선정된 쉐보레 전기차 볼트

아직 모터쇼 행사장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서 아래층의 상설 전시장에서 쉐보레의 수소차와 미시건 대학이 내놓은 자율주행차를 잠시 구경합니다. 그리고 세미나가 열리는 곳에 세워둔 쉐보레의 전기차 볼트도 봤습니다. 잡지 ‘모터트렌드’가 선정한 올해의 차라고 배너를 붙여놨네요.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쉐보레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쉐보레

모터쇼 전날은 사람이 많지 않네요. 한국에서 간 참가자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몇몇 사람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하고 다시 추운 거리를 걷고 성실한 횡단보도의 그분과 눈을 마주치고 호텔로 돌아옵니다.

모터쇼 개막 전 날은 조금 한가하다.

모터쇼의 미디어 공개 당일은 새벽 6시부터 일정이 시작됩니다. 일찍 자고 일어나야겠지만 비행기에서 10시간 가까이 자고 또 자려니 쉽지 않습니다. 디트로이트의 밤은 춥고 깁니다. 그래도 총소리는 안 들리네요.

[디트로이트=더 드라이브 dail.lee@thedr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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