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트로엥이 선보인 DS3 R1은 랠리를 위해 튜닝된 레이싱카에 속한다. 랠리 환경을 최적화 시키기 위해 6단 수동변속기가 탑재됐는데, 달리는 맛이 남다르다. 말레이시아 세팡에 위치한 인터네셔널 서킷 주변에서 직접 시승해봤다.

시승 차량은 DS3 R1으로 랠리를 위해 특별히 개조된 사양의 레이싱카였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한 모든 시트는 탈거됐으며, 경량화를 위해 차량 내장재들도 모두 제거됐다.

이렇게 경량화를 이룬 DS3 R1의 공차중량은 1180kg, 최고출력 130마력을 발휘하며 랠리 주행을 위해 특별히 개조된 6단 수동변속기 탓에 최고속도는 160km/h로 제한되어있다.

외관은 양산형 DS3와 별반 다를 게 없으나, 에어컨 등 공조장치도 모두 탈거됐기 때문에 실내 공기 유입을 위한 루프스쿠프가 장착되어있다. 이와 함께 미쉐린에서 제작한 랠리타이어를 장착했다.

주행 순서가 됐다는 안내를 듣고 차량에 앉았다. 단단한 버킷시트와 공조장치가 없어 푹푹찌는 실내는 헬멧 탓에 유독 더 답답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6점식 벨트를 착용하고 시동을 걸자 조율되지 않은 4기통 특유의 엔진 사운드가 시끄럽게 울렸다.

군 복무시절 레토나를 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강원도 산기슭 비포장 길을 많이도 달렸지만, 정해진 구간에서 스포츠 주행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동승한 인스트럭터도 걱정하는 모양새가 역력했다. 옆에 동승한 한국인 운전자의 운전 실력에 대해 의심하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당초 주행 코스는 예정된 흙과 자갈길이 아닌 진흙탕길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간밤에 내린 비 탓이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바닥이 미끄러워진 탓에 더 재밌는 주행이 될 것이라고 서로를 격려했다. 첫 주행은 코스를 익히기 위해 1단 기어와 2단 기어를 반복하며 저속 주행으로 임했다.

인스트럭터의 차분한 변속과 핸들링 지시, 그리고 코너 임계점을 표시한 고깔과 브레이킹 포인트를 천천히 확인해나가며 코스를 익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코너를 탈출한 뒤 다시 피트로 복귀했다.

긴장이 역력한 탓에 이마를 타고 눈 속으로 땀이 비오듯 쏟아졌고, 눈이 따가운 탓에 잠시 헬멧을 벗었다. 인스트럭터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쏟아내는 기자를 보고 눈웃음을 짓더니 이내 이제 본격적으로 달리자는 사인을 보냈다.

코스가 눈에 익어 자신감이 붙을 때쯤 변속 임계점은 2단을 넘어 어느덧 3단과 4단 기어를 오갔다. 기어비가 짧아 조금이라도 속도를 높이거나 낮추려면 기어 변속을 반복해야 했다.

사실상 갯벌과 비슷한 수준의 아주 묽은 진흙과 웅덩이가 반복되는 길에서도 DS3 R1은 아무런 무리 없이 지속적으로 진흙과 흙탕물을 뱉어내기에 바빴다. 그만큼 안정적인 그립감이 인상적이었지만, 여전히 노면은 장판 위에 식용유를 엎질러놓은 것처럼 미끄러웠다.

국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DS3는 대다수가 디젤엔진 모델이라 그런지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시트로엥의 주행감은 제법 인상적이었다. 엔진 응답성은 아주 빨랐고, 6단 수동변속기의 직결감은 정확하고 오차가 없었다.

레이싱 핸들로 개조된 스티어링의 조작감 역시 노면 상태 탓인지 가볍고 산뜻하게 움직였다. 오히려 묵직한 움직임을 보였다면 조작에 꽤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건 기자의 생각이다.

코스를 빠져 나오는 데에 부족함 없는 구동력을 발휘해 생각보다 재미있는 운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오버해서 움직이려 하면 가차없이 그립을 잃고 스핀을 하기 일쑤였다. 동승한 인스트럭터는 WRC에서처럼 적당한 조향 수준과 변속 시점을 안내했지만, 운전 실력을 맹신한 완벽한 오판이었던 것이다.

WRC를 비롯한 랠리 경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느 정도 페이스가 붙었고, 노면이 미끄러운 만큼 사이드브레이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라는 인스트럭터의 권유에 곧장 사이드브레이크를 당겼지만, 정교하고 기민하게 스티어링을 조작하지 않으면 스핀을 일으킬 수 있는 위협이 곧장 도사려있었다.

그럼에도 운전은 재밌었다. WRC에서 검증된 DS3의 기민한 움직임은 마치 기자가 랠리 드라이버가 된 것인양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노면은 제2의 문제일 뿐, 미쉐린의 랠리타이어와 DS3 R1의 조합은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AWD 차량이 아닌 전륜구동 모델이었지만, 주행에 자신감이 붙으니 부족한 그립을 활용해 차를 미끄러트려 주행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인스트럭터는 선데이 드라이버(Sunday Driver : 초보운전자)인 줄 알았는데 차를 즐길 줄 안다며 제법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시트로엥 DS3와는 분명히 다른 성향을 보인 차였다. 독특한 디자인에 제법 준수한 연비를 보이는 소형차 정도로 생각한 기자의 인식은 반대로 뒤집혔다.

일반 서킷주행에서도 제법 재밌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국내 시장에서 PSA가 판매하고 있는 DS3의 시장 반응과 이 차의 이미지가 한참 동안을 반복해서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