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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르노삼성이 내년 출시할 ‘클리오’..서킷서 달려보니
르노삼성이 내년 출시할 예정인 소형 해치백 ‘클리오’를 말레이시아 세팡 인터네셔널 서킷에서 시승했다.
지난 8월 말 시승한 르노 클리오는 유럽에서 열리는 클리오 원메이크 레이스 사양에 맞게 개조된 ‘클리오 컵카’다. 레이스 규정에 맞게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한 시트는 모두 제거됐으며, 경량화를 통한 주행성능을 극대화 하기 위해 내장재 역시 모두 삭제됐다.
외형은 양산형의 르노 클리오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특별한 에어로파츠가 추가된 건 아니지만, 공기 흡입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하단 덕트가 모두 개방됐고, 다운포스를 생성하기 위한 스포일러가 높게 솟아 있는 게 눈에 띈다. 별도의 공조장치가 마련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실내 공기 순환을 위한 루프 스쿠프도 마련됐다.
클리오 컵카의 공차중량은 1080kg 정도로 국산 경차보다 조금 무거운 수준이지만, 르노의 4기통 1.6리터 터보엔진을 튜닝해 220마력이라는 높은 출력을 발휘한다. 소형차지만, 왠만한 6기통 세단 수준의 출력을 발휘한다는 인스트럭터의 브리핑에 가슴이 뛰었다.
여기에 패들시프트 방식의 6단 시퀀셜 변속기를 장착했다. 수동변속기 못지않게 변속 반응이 빠르면서도 편리성이 증대됐지만, ‘도그미션(Dog Mission)’이라는 애칭이 붙었을 정도로 시끄럽고 변속 충격이 큰게 특징이다.
시승한 클리오 컵카의 타이어는 미쉐린의 슬릭 타이어가 장착됐다. 타이어 트레드가 없고 컴파운드가 말랑말랑해서 높은 접지력을 발휘하는 레이싱 타이어지만, 그만큼 타이어의 수명이 짧다는 특징이 있다.
시승이 진행된 곳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 위치한 세팡 인터네셔널 서킷, 이곳은 F1 경기는 물론 24시간 레이스 등 큰 규모의 모터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국제 규격의 자동차 경기장이다. 주행은 풀 코스가 아닌 경기장 남쪽 코스를 분할한 상설 구간에서 진행됐다.
몸에 꽉 맞는 레이싱 슈트와 헬멧, 장갑과 레이싱슈즈 등 ‘중무장’을 마치고 클리오의 문을 열었다. 실내 못지않게 눈에 들어오는 건 차체 강성 보강을 위해 복잡하게 얼기설기 얽혀있는 롤케이지 바였다. 하지만 양산차 기반이기 때문에 탑승에 어려움은 없다.
안락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단단한 버킷시트는 앉기만 했음에도 몸을 한껏 압박한다.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6점식 벨트를 착용했다. 뻥 뚫린 주행로가 눈앞에 펼쳐졌고 긴장감이 한층 끌어올랐다.
열쇠를 돌리는 방식이나 스타트 버튼을 이용해 시동을 걸면 얼마나 편리할까, 자동차 시동 거는 게 이렇게 복잡할 줄이야, 공상과학 영화에서 우주선에 시동을 거는 듯 몇 가지 버튼들을 조작하고 누르면 안될 것 같은 빨간 캡을 열어 버튼을 꾹 누르니 신경질을 부리는 듯 한 레이싱카 특유의 사운드가 고막을 때린다.
클리오 컵카는 물론, 시퀀셜 변속기를 장착한 레이싱카들의 변속 방법은 제법 특이하다. 패들시프트로 모든 것을 조작해야 하는데, 중립 상태에서 클러치 폐달을 밟고 엔진 회전수를 2500~3000rpm까지 끌어올린 뒤 클러치 폐달을 서서히 떼어나가 1단기어로 변속을 진행한다. 엔진 회전수가 이보다 낮다면 망치로 차체를 크게 후려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시동이 꺼진다.
다행히 큰 실수 없이 1단 기어를 넣고 서킷 본 구간으로 합류해나갔다. 이후부턴 클러치의 추가 조작 없이 패들시프트로만 변속이 가능하다. 일반 양산 차량에 들어갈만한 흡음재 같은 내장재들이 모두 탈거된 상태기 때문에 바닥에 튀는 작은 자갈 소리, 기어가 한 단, 한 단 물려나가는 소리 등 헬멧을 쓰고 있지만 제법 시끄럽다.
세팡 서킷은 평소 그란투리스모 게임에서 나름 자신 있게 주행하는 코스지만, 실 주행은 분명히 다르기에 첫 랩에선 영국인 인스트럭터의 지시에 따랐다. 몇 번째 코너 에서는 엑셀러레이터를 얼마나 전개해도 괜찮은지, 이 구간에선 몇 단까지 기어 단수를 낮춰야 가장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지, 브레이크를 밟는 강도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를 꼼꼼하게 코칭했다.
“Okay I’m ready gogogo !” 마지막 코너에 진입하고 있을 때, 헬멧에 내장된 라디오 스피커로 특유의 고급스러운 영국 억양이 들려온다. 이제 알려준 대로 마음껏 타보라는 지시다.
그렇게 마지막 코너를 탈출하자 눈앞에 나타난 2km가 넘는 직선 구간이 기자를 반겼다. 기다렸다는 듯 서서히 엑셀러레이터를 밟은 오른발에 점차 힘을 줘 나갔다. 클리오 컵카의 가속 성능은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도달하는데 5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전자식 계기판은 변속 시점에 왔다는 초록색 등화를 점등시켰고, 오른쪽 방향의 패들시프트를 당겨내 변속을 진행하자 시퀀셜 변속기 특유의 강한 충격이 등을 때린다.
속도계가 순식간에 200km/h 인근까지 치솟으려는 순간 다가오는 첫 번째 코너, 익힌대로 풀 브레이크를 전개해 속도를 급격하게 줄인다. 보강된 차체와 브레이크 시스템은 스릴 따윈 없이 확실하게 제동을 해낸다. 버킷시트에 단단히 구속된 탓에 신체의 쏠림은 없지만, 그에 상응하는 횡가속력은 있는 그대로의 날것으로 느껴지며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코너링 성능은 여타 일반 도로에서 주행할 수 있는 고성능차량 그 이상을 선사한다. 쫀득한 슬릭타이어, 보강된 차체와 롤링현상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돌같은 서스펜션, 신경질적이다 싶을 정도의 민감한 엑셀러레이터 반응이 네박자를 쿵짝 맞춰낸다.
클리오는 기자의 생각을 읽는 듯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줬다. 비록 레이스를 위해 개조됐지만, 탄탄한 기본기가 없다면 이는 불가능 할 것이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서킷이 제법 익숙해지자 동승한 영국인 인스트럭터는 칭찬인지 격려인지 모를 ‘good job’과 ‘brilliant’를 연발해냈다. 한계점에 가까운 수준으로 차량을 몰아붙이지만, 클리오 컵카는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다는 듯 든든한 움직임을 보이며 기자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평범한 소형 해치백이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양산형 모델은 제법 만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환골탈태한 클리오 컵카는 결코 만만치 않은, 핫해치를 뛰어 넘은 스포츠카의 모습이었다. 유럽에서 레이스 용도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추가로ㅁ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했다.
오는 2017년 르노삼성이 클리오를 가져온다는 소식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소형차 시장은 그 어느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시장이다. 근래엔 소형 SUV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레이싱 DNA라는 훌륭한 유전자를 지닌 만큼, 내년 신차 출시와 함께 모터스포츠를 연계한 마케팅들을 활발하게 펼쳐나간다면 QM3와 SM6에 이은 또 다른 히트작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