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중국 관광객들은 요즘 렌터카를 빌려서 여행하는 유행이 불고 있다던가. 우리나라에서 삼삼오오 짝을 이뤄 차 한 대로 여행을 다닌단다. 예전에는 그저 여행을 간다는 자체로 부러운 일이었지만 이제는 어디를 갔냐는 건 둘째고 어디서 잤냐, 어떻게 다녔냐, 무엇을 먹었냐처럼 구체적인 것들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대다.

여행을 직업으로 다니는 기자나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먹스타그램, 먹방이 유행하듯 SNS에 각 지방의 숨은 맛집 정도는 발굴해 소개해야 그럴듯한 기사로 인정받는다. 어찌 그게 그리 쉬운 일일까. 십 수 년 점심을 먹은 서울 광화문 일대에도 숨겨진 맛집이 아직도 있는데 여행 전문가라고 어지간한 곳을 소개했다간 쏟아지는 댓글에 뼈도 못 추린다.

이번 여행은 독특하다. 주제는 드라이브. 차는 르노삼성자동차의 소형 SUV QM3다. 기자처럼 덩치 큰 남자들을 이 차에 다섯 명 태운다면 서울에서 출발해 천안을 지나지 못하고 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기자기하고 작은 대신 연비는 좋다. 천안까지 가도 기름 바늘은 ‘F’에서 내려갈 줄 모른다.

어찌됐건 목적지는 남해다. 남해 바다만큼이나 파란 차 QM3를 타고 떠났다. 서울에서 어림잡아 5시간 거리. 천안, 대전을 지나 덕유산 자락의 무주를 거치고 지리산 자락의 함양과 진주를 지난다. 일단 유명하다는 독일인 마을을 목표로 떠났다. 원래는 남해군 가운데도 동쪽의 구석이었지만 사천에서 창선도를 지나는 연륙교가 개통돼 동쪽에서 들어가면 된다.

이번 취재의 발이 되어준 QM3는 40대 아저씨인 기자와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특별한 동행과 함께했다. 지난해 3개월간의 남미 순회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역마살을 어찌하지 못하고 부들거리는 30대 여성 세 명이다. 모두 잡지사와 신문사에서 일하던 기자 혹은 작가들이다. 현재는 여행을 다니며 주변인들을 현혹시키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남미를 다녀온 이야기는 조만간 책으로 출간한다고 한다.

‘세 女행자’라고 이름까지 붙여서 활동하는 이들은 이번 여행의 게스트다. 다만 실험적인 게스트다. 박산하 작가가 우여곡절 끝에 면허를 딴 것이 계기다. 용감하고 과감하게 운전을 하기로 결정했고 바다처럼 파란 QM3 칸느블루와 함께 남해로 달리기로 했다. 이제 막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박 작가와 QM3는 우리에게 설렘이자 불안함이고 즐거움이자 구경꺼리다.

자신들이 ‘여성’임을 애써 강조하는 이들은 각자 여행에서 맞는 역할이 다르다. 맏언니 홍유진 작가는 뛰어 노는 것을 좋아한다. 남해 여행에서는 최근 배운 수영 실력을 선보였다. 수영장에서 두어 달 배운 실력으로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모습은 정말 용감하다.

둘째 박산하 작가는 오롯이 ‘운전’이 목표다. ‘안전’까지 더한다면 더 좋겠지만 그녀에게 또 다른 것을 추가한다는 건 정말 무리다.

막내 양혜선 작가는 일단 남해의 전통시장부터 검색했다. 뚜벅이로 여행 다니던 시절 가장 부러운 것이 차와 집이었다며 요리를 할 수 있는 집과 재료를 사서 운반할 수 있는 차가 생겼으니 이제야 말로 즐거운 음식 여행을 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먼저 도착한 곳은 요즘 핫하다는 숙박어플 ‘에어비앤비’로 찾은 독일인 마을 앞의 숙소. 와 보니 동네가 모두 펜션이자 숙소다. 그나마 급박한 일정 때문에 부랴부랴 구한 숙소인데 전망이 끝내준다. 베란다에 서면 물건리(동네이름이다)가 한 눈에 보인다. 이곳은 유명한 방풍나무 숲인 ‘어부림’이 유명한 곳이다. 해발 176.4m의 나지막한 당뫼산을 등에 지고 앞에는 물건항 바다가 펼쳐진다. 방파제 안쪽에 방풍림 사이에는 아주 작은 길이 100m 정도의 해수욕장도 있다. 한 여름에도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서쪽으로 해발 348.5의 국수산 자락으로는 독일 마을이 있다. 최근에야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대한민국 근대사에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여행의 재미는 먹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던가. 물건리로 들어오기 전에 봐둔 마트로 일부 일행은 장을 보러 떠났다. 나머지는 바닷가 산책을 했다. 펜션에서 마련해준 숯을 피우고 돼지 목살을 구울 준비를 한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만약 국민음식 삼겹살을 숯불에 구웠다간 제대로 고기 먹기는 힘들다. 불쇼만 구경 할테니 잊지 말자. 숯불에는 목살.

양혜선 작가는 음식을 준비했다. 목살이라는 걸출한 메뉴가 있지만 그 전에 에피타이저로 냉 파스타를 제공한단다. 모두 남미 여행에서 ‘먹어야 산다’는 일념으로 개발한 메뉴들이다. 석 달간 해외여행을 하면 음식에 대한 향수가 솟아날 터. 그때마다 토마토소스를 진하게 풀어 김치찌개를 대신했다. 여행 음식에 술이 빠질 수 없다. 목살 한 점. 맥주 한 잔. 파스타 한 입. 와인 한 잔. 첫 날은 그렇게 저물었다.

이튿날 아침. 통유리로 쏟아지는 햇볕에 잠을 깬다. 동쪽을 바라보는 구조 때문에 늦잠자긴 힘들다. 물건항은 밤사이 건재했고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운 여름은 오늘도 계속될 예정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양아리 두모마을. 물건리에서 양아리로 이동이다. 남해군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차로 30분쯤 달려야하는데 중간에는 그 유명한 상주은모래해변이 있다. 모래가 곱고 반짝인다하여 붙은 이름인데 아마도 남해군 최고의 해수욕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모든 관광객은 이곳에 다 몰렸다. 해변에는 빼곡하게 파라솔이 꼽혀있고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다. 우리가 가는 곳이 여기가 아닌 것은 정말 다행이다. 한적한 곳이 좋다.

양아리 두모마을은 상주은모래해변에서 약 10분 정도 더 가야 나온다. 19번 국도에서 남쪽으로 표지판을 따라 계곡 길을 내려간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펜션과 수상스포츠가 특징이다. 1km쯤 떨어진 섬 노도까지 카약이나 카누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모를 것이라 생각한 두모마을에 도착하니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수영복만 입고 마을길을 활보한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한 총각은 해마다 이곳을 찾아온다고 했다. 한국에서 여행지를 소개하는 일을 해도 모르던 곳을 색목인들이 해마다 찾아왔다니 놀라울 뿐이다.

마을에서는 여름 휴가철에 해양레포츠로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 우리나라 남쪽 끝 섬의 한 구석 골짜기에서 금발의 처녀 총각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이곳이 이탈리아 친퀘테레의 한 마을처럼 느껴진다.

세 女행자들은 신났다. 물을 만나서다. 더운 여름에 이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카누를 타며 힘을 뺀 이들은 다시 스노클링을 하며 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다.

“보이는 게 없어” 군소리와 함께 스노클링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남해가 제주만큼 물이 맑다고 하지만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살고 있는 동남아에서의 스노클링하고는 다르단다. 남해에서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플란더나 세바스찬이 나타나길 기대하면 안 된다. 이곳은 참돔이 나타나고 숭어가 뛰어오르는 곳.

두모마을에서 직선으로 서쪽에 있는 곳이 남해 다랭이마을이다. 좌심방과 우심방처럼 서로 떨어진 곳이고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한 부분이지만 한국전쟁당시 안타까운 역사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 해변은 당시 군함들이 빼곡하게 늘어섰었고 폭격으로 인해 침몰하는 배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예전 취재 때 다랭이마을에서 만난 한 노파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 앞바다가 죽은 이들 피로 붉게 물들었었어”라며 끔찍했던 기억을 전해주었다.

과거의 이야기가 어찌됐건 이제 남해는 제주 못지않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볼 수 있는 가장 푸른 바다 남해. 세 女행자는 “면허를 따면 꼭 운전해서 와보고 싶다”던 소망을 이뤘다.

더 드라이브 이다일 기자 dail.lee@thedr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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