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자동차를 취재하러 떠났다. 프랑스 파리모터쇼다. 해마다 파리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꼭 챙기는 편인데 여러 차례 다니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다. 동선도 비슷하다. 같은 공항에 내려 같은 행사장으로 이동한다. 하는 일도 비슷하다. 하루나 이틀 정도 먼저 도착해 전야제 행사를 취재하고 프레스데이에 참석한다. 끝나면 잽싸게 가방을 싸들고 귀국한다.매번 반복되는 모터쇼 취재가 갑자기 지루해졌다. 모터쇼 이전에 하루의 시간이 남아서인지도 모른다. 귀중한 시간. 어떻게 쓸까 고민이 된다. 결혼 직후 떠난 유럽 여행길에서 파리의 시티투어 버스는 이미 타봤다. 지하철을 타고 바리바리 챙겨보던 것은 이미 배낭여행으로 끝냈다. 자동차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여러 차례 모터쇼 취재 경험으로 비춰볼 때 절대 추천할 수 없다. 서울보다 더 복잡하고 미로 같고 좁은 도시가 파리다.

자전거 빌리는 중 (훔치는 중 아님)

올해는 유독 자전거가 눈에 띤다. 벨리브‘Velib’라는 시스템이다. 2007년부터 시작한 이른바 공공자전거 정책이다. 파리시 전역에 1800개의 스테이션을 운영한다. 2만대의 자전거를 비치해두고 누구에게나 빌려준다. 하루 1.7유로의 티켓을 구입하거나 일주일에 8유로짜리 티켓을 구입하면 된다. 여행자는 신용카드로 계산해 일종의 보증금을 함께 내야하지만 사용이 끝나면 제때 환불된다. ‘자전거’와 ‘자유’를 합한 ‘velib’를 타고 파리 시내를 누볐다.자전거는 익숙하다. 한국에서도 취미로 자전거를 타고 있고 출퇴근에도 활용했었다. 주말에는 경기도 인근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기도 했다.

파리 시내 벨리브 스테이션 지도

파리의 1800군데 스테이션에서 자전거를 빌려준다니 솔깃했다. 게다가 30분이용하고 다시 스테이션에 반납하면 하루 1.7유로로 계속 사용할 수 있다. 하루짜리 짧은 여행을 계획한 여행자에게 파리를 돌아다니기 이보다 (싸고)좋은 수단은 없다.옛날 같으면 지리를 몰라 헤맬 것이 두려웠겠지만 우리에겐 구글맵이 있다. 스마트폰을 턱하고 열면 나오는 구글맵은 한국과 다르다. 길을 아주 자세히 보여주고 진행방향에 맞춰 내비게이션 역할까지 해준다. 자전거로 갈 때 걸리는 시간까지 알려주니 금상첨화다.

타이어에 바람은 빠지지 않았는지 꼭 확인하고 빌려야한다

노틀담 대성당 앞에서 벨리브를 빌렸다. 약간 후미진 골목의 입구에 자전거 20여대가 서 있다. 앞에는 주차요금 계산기처럼 생긴 기계가 있다. 신용카드를 넣고 1일짜리 티켓을 구입했다. ‘23 14 81 63’ 내가 사용할 번호다. 여기에 4자리 비밀번호를 넣는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이 번호만 있으면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벨리브의 상태를 꼭 확인하고 빌리라고 한다. 적당히 바람 빠진 곳은 없는지, 브레이크는 작동하는지 잡아보고 7번 자전거를 골랐다. 자전거의 목아지를 잡고 있던 걸쇠가 털컥 풀린다. 그런데 무겁다.

자전거 탄 풍경(레알)

가뿐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려는데 생각보다 무겁다. 특히 앞이 무겁다. 한국에서 고급은 아니어도 남자의 두 팔뚝으로 들기엔 무겁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벨리브를 들어 방향을 바꾸려다 깜짝 놀랐다.무쇠강철로 만든 자전거일까. 옛날 시장에서 물건을 나르던 자전거 이후 처음 보는 묵직함이다. 앞에는 바퀴와 연결된 전조등이 달렸고 오른쪽 손잡이에는 3단 변속기가 붙어있다. 나름대로 괜찮은 구성. 페달을 밟고 달리면 앞뒤로 불이 들어온다. 안전을 위해 필수품이니 반갑다. 핸들 앞에 있는 바구니는 물통이며 작은 가방을 놓기에 편했다.

첫 목적지는 에펠탑. 센강을 따라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된다. 그리 멀지 않은 곳. 구글 지도로 살펴보니 15분이 걸린다.두려웠던 도로 주행은 의외로 편리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고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배려도 눈에 띈다. ‘쉐어 더 로드’라는 스티커를 붙인 차도 많다. 비록 차선은 아니지만 길의 오른쪽을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주행할 수 있게 나눠 쓴다는 취지다.

벨리브의 1일 이용 티켓

실제로 엄청나게 많이 다니는 오토바이들을 위해 차들은 길을 비켜준다. 자전거 전용도로도 곳곳에 나오고 무엇보다 서울처럼 언덕과 산으로 이어지는 도시가 아닌 점이 반갑다.벨리브는 파리 시민들에게 실용적인 이동수단이다. 퇴근길의 아저씨도, 마트에 가는 아줌마도 이용한다. 잠시 파리를 찾은 여행자도 쉽게 빌리고 반납한다. 에펠탑에서는 투어버스를 탄 일행과 만나기로 했다.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오는 버스는 의외로 오래걸렸다. 에펠탑 근처의 벨리브 스테이션에 자전거를 반납하려는데 빈 곳이 없다. 워낙 도착지로 인기가 좋은 탓이다. 이럴 경우에는 빈자리가 나길 기다리거나 인근의 다른 스테이션으로 가야한다. 200~300m 마다 스테이션이 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시내 곳곳에 있는 벨리브 스테이션

벨리브를 타고 센강 주변을 달리니 상쾌하다. 물론 디젤차가 앞을 가로막으면 매캐한 냄새도 나지만 파리는 올해부터 20년 이상 노후차가 시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또, 디젤차도 시내 진입을 막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신 자전거는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더드라이브 이다일 기자=dail.lee@thedr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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